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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뮤직마켓 임형준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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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시간의 흐름이 많이 느껴지네요, 그동안 만나온게 거의 15년 가까이 된거 같아요

임 : 월간PA 때부터 봤으니 그렇군요
 
최 : 그렇네요, 그때 본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최 : 임형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임 : 막상 얘기하자니 애매하네요(웃음), 하고있는 일로 저는 10여년간 운영하던 AIM Recording 스튜디오 이후 현재 이뮤직마켓 닷컴(http://www.emusicmarket.com)이라는 글로벌 음악마켓을 운영 중이고 서울종합예술학교와 한국예술원에 출강중입니다.
오늘 음향얘기를 하자니 아는 것도 많이 없고.. 오디오가이 다른 분들의 인터뷰를 좀 읽어 보고 왔는데, 너무 전문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굳이 저까지 무슨 얘기보다는 한 사람정도는 쓸데없는 얘기를 해도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최 : 저도 사람사는 이야기들이라든지,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하는게 좋죠, 제가 아는 부분들도 있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처음 시작은 어떻게 하셨는지, 호주에는 언제 다녀오셨는지, 그 과정들이 궁금하네요.

임 : 음...저의 어머니께서 마침 국악을 하셨어요. 가야금 분야에서 명인으로 유명하셨고, 가야금을 중심으로 아쟁, 양금, 대금, 장구등을 하셨죠. 음악을 하시는 분이시다보니 가족 중에 한명은 음악을 시켜보자 그래서 얼떨결에 네 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엄하셔서 맞으면서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그러다 어머니께서 그 사실을 알게되었고 선생님은 ‘재능이 있어서 잘 가르칠려고 했다’ 라고 했지만, 어린애를 때리다가 걸렸으니 더 배울 상황이 되지 못했죠. 

그 뒤는 차라리 집에서 배워라 해서, 초등학교때부터 대학교때까지 아쟁을 했어요. 한데 초중고 내내 국악만 하다보니 또래 애들과 공통주제가 없이 친구라곤 책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국악을 해도 주변사람들과 공감을 할 수가 없는거에요. 그래서 대학교 들어가면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밴드를 만들고 기타를 치게 되었죠.
 


음악감상동호회도 만들고, 미디동호회도 만들어 여러 가지 관련 활동으로 지방에서 음악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지방에서 음악을 하다보니 선배들은 잘되면 나이트밴드 아니면 아예 관두던지, 아니면 서울가서 그 뒤로는 아예 소식도 없는 그런 걸 보며 지방에서 음악으로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꼈죠. 그리고 그 외 어찌어찌 지방을 벗어나 서울로 오면, 각 지방에서 다들 비슷한 생각으로 서울로 오기 때문에 아무리 지방에서 잘했어도 서울에오면 고만고만해지다가 그 틈에서 사라지기도 하는 경우들도 있었구요...사실 지금도 정말 많은 음악인과 교육기관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들로 이런저런 경쟁률이 엄청나잖아요. 그 당시엔 그런 고민들을 하다가 결심하고 학교를 휴학한 뒤 반년정도 일용직일로 돈을 모아 유학을 가게 되었답니다.

최 : 부모님은 안도와 주셨나요?

임 : 물론 부모님도 도와주셨죠.(웃음) 결국 IMF가 터져서 뭐 그렇게 되었지만. 외국에서의 학비라던가 생활비 만만치 않거든요. 혼자 할 수 있는 경우는 정말 일반적인 케이스르를 제외하곤 사실 집 떠나서 처음 시작하는 상황이라면 재정적인 지원을 못 받으면 페이스를 유지하기 어렵죠.
 


최 : 그런데 왜 기타연주가 아니라 사운드엔지니어가 되셨어요?
 
 
*SAE 스튜디오

임 : 그게 완전히 우울한 얘기인데요. 음악을 하면서 미래를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며 이것저것 알아보다, 음반프로듀서를 목표로 삼게 되었어요. 음반에 보면 뒷면에 크레딧에 Bob Rock, Beau Hill, Michael Wagener등 자주 겹치는 이름들이 있으면서 그 사람이 손대는 음반은 비슷한 느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매력을 느꼈죠. 한데 유학을 갔을때는, 영어를 거의 못할 때라, 기껏해야 팝송가사나 대충 외우고 그럴땐데, 지방유학원 소개로 들어간 SAE라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보니까 음향을 가르치는 학교인거에요. (School of Audio Engineering, Sydney, Australia) 사실 프로듀싱이 뭔지, 사운드엔지니어링이 뭔지도 잘 모를때니, 어차피 돈을 냈고, 왔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냥 공부할 수 밖에 없었죠. 차라리 미디를 계속했으면 좀 더 원하던걸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웃음)

*JMC 스튜디오

제가 받던 과정이 한반 정원 25명에서 최종시험으로 4명을 졸업시키고 그 4명이 Diploma 코스를 수료할 수 있었는데, 뭐 어찌 25명중 3등이 되서 Diploma 코스를 수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당시엔 수업을 녹음해서 하루에 세시간자며 무조건 외웠죠), 게다가 다행히 운이 좋아 거기 속해있던 Mirage Studio에서 NEVE VR 콘솔과 함께 레코딩 엔지니어로 스타트를 했어요.
 
*미라지스튜디오
 
한데 저희 책임자였던 분이, 엘튼 존이나 스티비원더를 작업했다던 분인데, 막상 밑에서 일을 해보니 말만 무성한 사람인거에요. 이양반 얘기만 듣다가 비자나 미래에 답이 안나오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비자를 연장을 해야해서 JMC Academy 라는 비슷한 학교를 다시 등록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입학때 그전에 수업받은거나 일하던게 인정이 되어 반년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거기 출강하던, 지금 eMUSICMARKET.com의 호주파트너로 있는 롭 테일러를 그때 만나게 되었죠.
 
*알버트스튜디오에서 롭테일러와

 
*알버트스튜디오 B룸
 
정말 아주 오래되고 질긴 인연이죠. 금년에도 봤으니. 하여튼 그 사람이 영화 아이언맨 주제가로 유명한 Rock Band AC/DC가 소속되어있던 Albert Music/Production의 Recording Studio 에 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이틀 뒤부터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회사에서 In-house 엔지니어로 SSL 4000E 콘솔, DDA DCM232 콘솔등을 다루며 경험을 쌓다가, 그 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97년 즈음 한국으로 들어 왔어요.
 
한데 그 당시에 레코딩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은 꽤 외국 유학파들에게 배타적이었어요. 이력서를 한 200통 정도 뿌렸는데, 나이가 27살쯤 되었던 것 같은데, 처음 직원으로 받기엔 나이가 좀 많다, 경력으로 자리에 앉히기엔 이래저래 애매하다고 얘기도 들어가며,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참 애매한 상황이었죠.
 
지방에서 1톤트럭에 짐싣고 올라와 홍대 반지하 집에서 있으면서, 잠시동안 힘들었죠. 한데 마침 그전에 사운드아트라는 아마도 국내 최초의 음향잡지가 창간되며, 그 잡지의 호주 리포터를 했던 인연으로 잠시 정식기자로 있다가 그 당시 고 최진실씨 건물 지하에 있던 코아스튜디오라는 곳에서 얘기가 되어 SSL 6400G, Euphonix CS2000 등의 콘솔등을 다루며 한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죠.
 
참 많은 프리랜서 음향감독들이 오셨는데, 지금까지도 좋은 선후배관계로 자주 뵙고 계신 분들이 있네요.
 
한데 그 스튜디오가 정말 일이 너무나 많아서, 잠들면 못 일어날까봐 앉아서 자곤 할 정도였거든요. 아침 아홉시에 출근해서 새벽 네시 이후에 들어오거나 여섯시쯤 들어오거나 하다가 결국 건강이 안 좋아져 쉬던 와중에 그전 사운드아트 때 한국 리포터로 있던 현재 동아방송대 교수와 Soundkorea ENG소장을 맡고계신 이수용씨의 제의로 현재 천이미디어 대표를 맡고있는 이순천씨와 함께 세명이 월간PA 라는 음향잡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때 정훈씨를 만나게 되었죠. 여튼 PA 만든다음, 얼마지나지 않아 AIM Recording Studio를 만들었죠.
 
*AIM스튜디오 초기
최 : 스튜디오를 만들게 된 계기는요?
 
임 : 강남에 코아레코딩스튜디오에서 일을 한참 할 때였는데, 그때 인턴으로 일하며 마침 제 집앞에 살기까지하던 친구가 자기가 녹음실을 만들테니 실장으로 와달라고 해서, 장소 섭외하고, 장비섭외하고 가계약까지 한 상황에 그 친구가 중간에 잠수를 탄 거에요. 한데 그걸 몇 번 반복해서 하다가 그 친구가 그러다 아예 없어지다보니 저는 이제 너무 돌아가긴 늦어버린거죠. 누군가 수습은 해야하잖아요, 마무리를 져야지, 뭐 지금이야 젊었을 때니 그럴 수도 있다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는 정말 업계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하는 생각까지 했었지요. 아무도 신경 안쓸텐데 좀 오버했죠(웃음).
 
결국엔 스튜디오를 직접 책임을 지고 마무리를 져야겠다 해서 임대계약을 하기로 한 전날, 동네 산책 중에 붙어있던 임대 광고를 보고 들어간 곳에서 10년을 스튜디오를 운영했죠.
 
30평 계약진행하기 바로 전날 70평 가까운 평수를 보자마자 지른거죠. 평수가 너무 넓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당연 들었지만 보는 순간 너무 좋았어요. 사실 녹음실 얘기에 말렸던 당시 통장에는 돈도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니 녹음실을 마무리 짓는 건 말도 안됐죠. 한데 당시 카드사들이 엄청나게 카드들을 만들어줬었거든요. 해서 겁도없이 카드를 12장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카드 대출들을 받고, 정 안되는 상황에 부모님께 도움도 받고...부모님한테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제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기 전까지는, 손을 벌려 그 자양분으로 하루라도 빨리 내가 성장하고, 빨리 벌고 독립해서 부모님께 빨리 돌려드려야 겠다 라는 마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죠. 그렇게 녹음실 공사를 시작을 했는데, 아시다시피 이 일이 장소임대 보증금, 스튜디오공사, 장비구입 및 설치, 직원월급, 운영비, 월세 등등 부담상황이 크잖아요.(10년동안 월세 계산해봤더니 몇억이 나오더라구요. 자기건물 같으면 그게 다 수익이고 재투자나 미래계획으로 들어갈 수 있을텐데, 그래서 남의 건물에서 스튜디오 운영은 참 웬만해선 말리고 싶어요.)
 
그 당시 방송중 ‘김종석 대학가다’라고, 가수 매니저하던 사람을 대학교 보내는 리얼리티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월간 PA와 함께 스튜디오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기사화 하면 어떻겠나 해서 공사 회사 하나를 소개 받았는데, 이 회사는 스튜디오 공사로 진출하고 싶은 신생회사라 홍보가 되고, 저희는 돈이 세이브가 되는 거였죠. 한데 중간에 그 당시 저희 회사 직원이 소개한 감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자재는 최고로 비싼 걸 넣고 자기는 일당을 꼬박꼬박 챙기면서 일정을 늘려놓으니, 처음 공사를 맡아본 어리버리한 양측은 큰 문제를 겪게 되었죠.
 
공사하던 회사는 예상보다 엄청나게 늘어버린 자재비에 부도가 나버리고, 저희는 저희대로 돈이 떨어져 공사 마무리도 못지고 바닥공사도 안되고 석고보드만 서있는 상황에 몇 개월을 그 공사장에 앉아있었어요. 신문지 깔고 앉아서 투자계획서 써서 엄청나게 돌렸죠. 많은 곳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성사된 게 없던 와중에, 어떻게 몇천만원을 빚을 내서 인테리어 마감공사를 마무리 했어요. 한데 이제는 장비를 구해야 하는데 또 돈이 없잖아요. 빚만 한가득인 와중에 그래도 장비들을 들여야 뭐가 되겠길래 업체들을 돌아다녔죠.
 
그 와중에 생각나는데 한서라는 업체사장님이 SSL 콘솔의 본사 사람을 앉을 의자 하나 없는 휑한데를 데리고 와서 "얘네가 이런 사정인데 어떻게 도와줄 수 없겠나" 했는데, 그 회사에서 도와주겠다 한 것을, 뭔 생각이었는지 전 아직 젊고 하니까 제가 돈 벌어서 사겠습니다 하고 그 고마운 제안을 거절한게 기억나네요.(결국 몇 년뒤에 사긴 샀죠 빚내서;;)
여튼 업체들을 돌아다니고, 그러다 미디앤사운드에 신용으로 몇천만원정도 장비를 받게되었습니다.
 
지금의 뮤직메트로 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셨군요. 이고시스템 대표님도 많이 도와주시고, 아무튼 업체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에 Adat 5대에 Mackie 3208에 Expander 연결해서 56채널을 만들고, 오토메이션으로 Ultra Mix를 구해 달고, 그러고 시작했죠. 그리고 시작해서 일을 하다보니, 다행이 많이 바쁘게 잘되었습니다.
 
스튜디오 공간도 좋았고, 홍대에서 그 당시 가장 큰 스튜디오 였을거에요. 근데 바쁜건 좋았지만 속사정은 재정적으로는 제가 만들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하게 돼서 억지로 얻은 빚잔치 위에 만들었다보니... 이래저래 좀 무리였죠.
 
뭐 그리고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많이 나가잖아요. 지금도 학생들이 "스튜디오에 취업하기 힘들지 않아요?" 한데 들어가긴 어려운데 처음에 많이들 관둬서 은근 자리가 많잖아요? 그러다보면 우리처럼 오래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죠.
 
최 : 100명에 2명정도나 남죠.
 
임 : 그래서 이런 무리인 상황에 업그레이드는 힘들고, 그래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다가 애들이 계속 나가니까 돈을 벌면 급여를 더 줄 수 있고, 시스템이 좋으면 미래를 걸 기반으로 있을 수 있을텐데, 내가 상황이 이정도 밖에 안되니 애들이 여기에 마음을 못잡고 다 떠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슬슬 속에 화가 도지기 시작하는걸 누르느라 몇 달을 소주를 병째 붓곤 했어요.
 
하지만 물리적인, 경제적인 상황적인 한계에 막혀 돌파구가 안보였어요. 바쁘던 시장도 시간이 갈수록 계속 일이 줄어드는게 보이고, 경쟁적으로 단가는 내려가는데. 게다가 심적으로도 힘들었던게, 사실 일자체로 봐도 뮤지션들조차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음악을 내손으로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가며 만들면 뿌듯할 것 같지만 막상 좀 하다보면 스피커 앞에 매달려서 말도 없이 앉아있는 사실 엄청나게 외로운 작업이거든요. 하나의 앨범작업이 끝나고 나면 바쁘게 다음손님이 들어오고, 끝나면 다음손님 들어오고, 그러면서 작업하고 간 사람들은 다음 것 준비하느라 대부분 한 1년 못보거나 아예 못보거나 하기도 하고...사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던 계기로 시작했던게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는데, 막상 하는 일의 성격은 그러지를 못한거죠. 거기다가 함께, 혹은 데리고 일하던, 내가 배트맨이면 로빈이었던 친구들이, 참 여러 좋은 친구들 있었지만, 여러 가지 나와 관련된 일로 관두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 안타까웠죠. 그러다 보니 가장 필요한건 그 친구들에게나 나에게 좀 더 ‘현실적인’ 의미가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래의 비전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를 악물었죠. 처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첫 번째 빚을 삼년만에 다 갚고, 한서대표님 앞에 앉아서 지금 심정이 이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고 부탁해서 오픈4년만에 6개월을 일본을 뒤져 SSL 4056G 56채널 콘솔을 공수해왔죠.
 




최 : 그때 기뻐했던 형준씨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때 형준씨가 그랬어요, 클라이언트들이 와서 Mackie라고 무시한다고. 사운드 잘 나오는데도 어떻게 빚을 내서라도 SSL 사야겠다라고 그랬어요.
 
임 : (웃음) 사실 지금도 SSL이 아니라 Mackie 믹서로 믹싱하면 더 잘할 것 같은 사운드들이 있어요, 그 왜 SSL처럼 너무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게 아니라 막 뭉쳐서 나와줘야 하는 음악들 있죠? 그런 사운드들은 훨씬 막 들이대는 맛으로 좋은 것 같아요.
여튼 나이 서른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34살에 SSL 콘솔을 샀죠. 바야흐로 빚더미에 위에 냉큼 올라간거죠. 젊은 나이다보니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많은걸 희생했죠.
사실 음향 외에 취미던 뭐던 다른 걸 조금이라도 하고 싶어도 녹음실부터 집까지 도보3분,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밤새고 뭐 슬쩍 술 한잔하고 새벽에 들어오고 하니 정말 하루에 햇빛 볼 시간이 하루에 3,4분 밖에 안됐었고, 그때는 뭐 그런 생활이 자랑스러웠죠. 근데, 문제는 그때 어느날 주변을 스윽 돌아보니까, 세션뮤지션들은 페이가 올라가는데, 녹음실단가들은 그대로, 아니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곳도 있는거에요. 저 한국 들어 왔을당시, 97~8년이니 그때 녹음실 렌탈비만 프로당 40만원 정도였고 기사료는 별도 그랬거든요? 그때가 15년 전쯤인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떨어졌죠. 다른 물가들은 올라가고 있는데 이건 내려가고, 장비들은 가치가 떨어지고, 노화되고 그러니 교체해야하고. 게다가 직업병인 장비욕심까지 있어놔서 이거저거 쌓이는데 그게 단가가 오르는 것하고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서(480L이나 System 6000을 샀다고 해서 렌탈비가 오르진 않잖아요 ㅎㅎ) 실제로는 전혀 사업적인 부분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좋지가 않았죠.
 
거기다가 이 얘기는 제 위의 선배님들이 들으시면 기분이 어떨런지 모르겠습니다만, 40대 후반, 50대가 넘어 우리나라에서 음악 엔지니어로 활동하기가 쉽지가 않은게 현실입니다. 다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은퇴 아닌 은퇴의 시기가 오면, 그 뒤에 하는 일이 관련있는 일 아니면 전혀 다른 일로 가야 하는거에요. 한데 그동안 지하에서 계속 해왔던 폐쇄적인 부분들이 있는 상황에 유연성있게 적응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고...여튼 그런 상황이 저한테도 올 것 같은거에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까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마스터링쪽 사업을 진행해보자 해서 저와 호주에서 인연이 깊은 Rob Taylor에게 제안을 했죠.
 
 
그와 함께 SAE의 Tom meisner가 소유하고 시드니에서 가장 유명한 마스터링 스튜디오인 301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를 보쌈(?)해 왔어요. 그전에도 몇 번 호주에서 마스터링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서 안면이 있었더랬죠. 그리곤 그 사람들과 아시아를 목표로 한 마스터링 비즈니스를 해보자 해서 35살쯤에 스튜디오의 2층에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공사하고, 미국에서 장비를 들여오고, 호주에서 스피커를 실어오고 해서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만들었죠. 그렇게 스튜디오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외국 엔지니어 두 명이 로테이션하는 상황에서 롭을 제외한 한명이 핑계를 대고 한국을 안온 거에요. 스케줄들은 엉키기 시작하고, 사람은 안오고. 고민고민하다가 대체인력을 구하자 해서 전 세계의 인터넷 사이트로 초유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구인을 하기 시작했죠(집이고 직장이고 한달씩 비우고 로테이션으로 한국을 왔어야 하니까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때 우연찮게 연결이 되어 한국으로 오는 모험을 하게 된 겁도 없던 사람들이, 현재 버클리 음향과 교수로 있고, 보스턴의 유명한 마스터링스튜디오 M-works의 오너로 있는 Jonathan Wyner, 독일의 Jammin Masters 의 오너인 Cem Oral이었죠. 한가지 재미있는건, Rob, Jonathan, Cem 모두가 각자 사운드엔지니어 뿐만 아니라 유명뮤지션으로도 활동했고 프로듀서로도 엄청난 성공들을 거둔 사람들이었고, 각자의 나라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한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저한테 말려서 한국에 열 몇 시간을 비행기에 다들 구겨져서 온 거죠.
그래서 미국, 호주, 독일, 한국 이렇게 4개국의 엔지니어로 아시아를 정복하자 하고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서울에 오픈했죠.
 
최 : 그때 당시로써는 굉장히 선구적인 시도를 하신거였네요,
 
임 : 큰 실수를 한거죠.(웃음) 얘네들 왔다갔다 비행기하며, 숙박비하며, 제 시간은 아예 없었구요, 지금 생각이라면 차라리 네트워크로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할걸 그랬어요.
 
게다가 하고있던 와중에 궤도에 이제 또 오를만 하니까 동업자랑 문제가 생긴거죠. 그래서 딱 그 순간이 되고 나니까, 음...제가 마스터링 스튜디오 오픈 공지한 날까지 사실은 스피커도 세관에서 들어오질 못했어요. 어찌어찌 죽어라 해서 소리까진 내고 오픈식을 했었죠. 그날 다들 가고나니, 아니 도대체 내 인생에 뭘하라고 이렇게 일들이 많나 싶더라구요. 뭐 지금이야 보면 웃지만, 한 순간순간들이 대부분 쉽게 극복 못할 일들이 많았어서... 여튼 일은 벌려놓고, 만들기도 열심히 했고, 홍보도 열심히 하면서, 죽어라 마스터링 스튜디오 일을 시작을 했죠.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진거에요. 일에 정나미가 뚝 떨어 지는거에요. 녹음실도 차려봤고 SSL도 사봤고 마스터링 스튜디오까지 만들어봤으니 젊은 나이에 스튜디오에 관련해서 할건 다 해봤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니 아무것도 미련이 없더라구요. 게다가 마침 결혼을 그 당시에 했는데, 그때 앨범 6장을 동시에 하고 그럴 때였어요. 보통 앨범 세장 동시에 녹음하면 스케줄이 정신이 없는데 여섯장을 하고있으니 거의 말도 안되게 바빴죠. 한데 쩔어가지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와이프가 안자고 기다리고 있는거에요. 이제 막 결혼했을 당시니까... 얼마 안됐는데, 그걸 보니 너무 미안해 지는거에요 나 좋자고 일을 시작해서...가족이라는게 얼굴을 보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그전에는 겉멋 들어서 음악이 어쩌네 음악생활이 어쩌네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나랑 사는 사람이 생기니까 이 사람에 대한 책임이라는게, 과연 이일을 해서... 가정을 위한건지 나를 위한건지, 누구를 위한건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서 더 이상 이러면 답이 안 나오겠다, 폐인이 되겠다 싶은거에요. 음악자체가 재미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싫어지면서 이런 일도 벌어지고 하니까 아예 다른 일을 할려고 했죠.
 
저희 선배 분들 중에서도 식당얘기하시는 분들 있는데, 이게 믹싱이 은근 요리랑 비슷해요. 조리사 자격증 따신 분들도 좀 있으시고, 다들 맛있는거 좋아하고 그러시거든요. 그리고 사실 저도 식당을 했어요. 월간 PA 같이 만들었던 이수용씨, 이순천씨, 그렇게 홍대에서 문화예술쪽 사람들을 대상으로 싸롱처럼 해보자, 한데 일들이 다들 바빠서 사장들이 신경을 못쓰니까 가게가 한 일년만에...ㅠㅠ 지금이라면 진짜 열심히 하고 있을텐데, 여튼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 당시에 제일 싫었던건, 일을 하면서 재미와 보람과 의욕이 없어진거에요. 한가지 더, 정훈씨 같은 경우에는 레이블이 있어서 기록물이 남고, 뮤지션들 같은 경우에는 저작권이라도 나오고 하는데, 엔지니어는 그런게 없잖아요. 근데 사실 음악분위기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 믹싱엔지니언데 말이죠. 어떻게 보면 그 곡을 최종작업을 하는 사람인데, 왜 저작권같은 지속적인 일의 가치에 대한 인정도 없나, 게다가 퇴직금이나 연금도 없잖아요. 다른 분들 은퇴할 나이가 되기전에 나는 좀 더 빨리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할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식당말고 뭐가 있나 생각을 했어요.
 

음...그러면서 이뮤직마켓의 기본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거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게되면 악기제조업체가 돈을 벌고, 그 업체가 그 수익으로 세미나나 클리닉을 진행하여 음악인들이 더 많은 교육을 받게되면 음악 퀄리티가 좋아지게되고, 그렇다보면 더 많은 음악들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되어 더 많은 음악이 생산될 수 있는 토양이 생기게 되지 않나 하는 당연한 원칙을 생각을 했죠.
 
그와 함께 자신의 음악퀄리티가 높아지게 되면 자기음악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고 소중한 부분들, 그리고 주변의 자신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기반산업들(악기제조업체, 스튜디오, 세션뮤지션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지요. 그전에 어느 선배에게 들었던 얘기로 그 분은 첫 녹음을 하는 사람은 절대 금액을 깎지 마시라고 한다는거에요. 자신의 첫 꿈을 만들어주는 사람에게 잘 부탁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금액으로 흥정해서는 그런 마인드는 결코 앞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거죠. 그리고 자기 가치에 맞는 정당한 거래가 활성화되어야 서로간의 덤핑으로 제 살을 깎아먹지 않고 정당한 평가와 운영의 기반아래 꼭 필요한 기초산업들이 정상적인 운영의 설계아래 살아남죠. 사실 기술의 발전이라는 핑계를 포함, 여러 이유 아래 기초 산업이 다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도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지만 얘네들이 업계에 진출했을때 너는 시급이 얼마고 미래는 어떻게 되고, 니가 50대 60대가 될 때까지 현직에서 일을 하며 퇴직을 하면 연금이... 뭐 방금 얘기한 것들이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는 있지만,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인생을 걸고 하는 일에 뒤통수는 맞지 말아야죠. 이런 일반적인,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반이 제가 말하는 기반인데, 기초산업이 무너지면 뭐 기반이고 뭐고 없는거죠.
 
게다가 수익구조가 불합리하게 자리잡은 상황에서 유지하기도 힘든 와중에 그걸보고 유일한 동료들이 문 닫으세요 하고 얘기하는 상황이면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생각도 많이 들거든요. 음악인은 음악인 나름대로, 산업은 산업나름대로, 종사자는 종사자 나름대로 참 문제점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서 새로운 개선점이라던가, 저희 회사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음악인과 업체, 기반산업이 상호 순환구조를 갖고 활성화를 연계해 가는 큰 그림을 만들어갈려면 주장에 대한 ‘당위성’과 그 의도에 대한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는 ‘발언권’이 있어야 되는데, 실제로 큰 목소리를 갖고있는 곳은 방송국 아니면 유통사죠.
 
이런 곳들은 자신측의 경제논리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뭔가 조그마한 움직임을 만든다던가, 하던 부분들은 있었지만, 막상 대자본이 한번 들어오면 무너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고, 또 그러고 있죠. 게다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듣고 있는 얘기지만, 아무래도 성격탓도 있겠지만 지속적인 목표를 위해 잘 뭉치지를 못하더라는거죠. 만약 그렇게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을려면 서로가 절실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음악인들에게 과연 절실한게 뭘까하면 자신의 음악으로 하고싶은 얘기를 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행복해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수익을 발생시키고, 거기서 조금 더 모아 다음 음악을 준비할 수 있고...뭐 이런거 아닐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창구가 기존에 있던 이런저런 시스템들말고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결론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더 많은 수익창구를 마련하고, 그리고 새로운 경로를 소개하는 뮤직마켓을 만들어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된거죠.
 
게다가 외국친구들과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니, 한국에서만 한정된 여러 가지 제약, 음악적 토양의 한계와 시스템의 불합리한 기회부여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미국도, 일본친구도 다 공감을 하더군요. 각 나라의 목마르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시장을 형성하고, 그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와서 거래를 형성하며 그들의 소스를 구매해서 음악에, 아이디어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하는 이런 심플한 취지에서 시작을 했는데, 실제로는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느라 정말 여러 문제들이 있었죠. 없었던 것을 만드는 건 정말 머리가 아프더군요.
 
제가 녹음실을 할때 녹음실로 돈을 어느정도 벌었다고 자산가치를 생각했었는데, 녹음실정리를 할 때 보니까 계산상 3~4억 정도를 그동안 건물주에게 월세로 줬더라구요. 만약 이 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돈으로 있었으면 제 녹음실이 엄청 발전을 했겠죠. 자기건물에서 녹음실을 한다고하면 모를까... 남의 임대에서 이런 기초산업을 투자해서 한다면 투자대비 수익으로는 하다못해 일반 술집에 비교도 못할 상황이 되는데, 그 꿈과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사업이 존재해야할 산업구조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며 참 안타까웠죠. 게다가 음악하는 사람들은 관두는 사람이 있고, 또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샘물에서 꿈과 희망과 환상은 있지만 현실의 해결책은 많이 없더라구요.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내기위해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시니어들과도 공유하고, 커뮤니티나 마켓, 정보공유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원하면 관련 업체들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업체들에게 세미나, 클리닉, 지원등을 부탁하고 어떤 창구에서 음악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하며 활성화가 되어서, 좀 더 실력이라든가, 시야가 향상이 되면 그건 당연히 업계로 다시 환원되어 돌아오는거라 생각했죠.
 

최 : 그러면 지금 하시고 계신 뮤직 마켓은 정확히 뭔가요?
 
임 : 앞서 말씀드렸듯 이뮤직 마켓은 심플한 아이디어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가끔 옛날에 염색하고 다닐때면, 어떤 자리를 가면 음악하시지 않냐고 물어보곤 하면서 ‘저도 옛날에 음악했는데~’ 라며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았죠. 음악을 평생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첫 번째 장애로 생계를 생각해야 하고, 지역/지방에서 음악을 하는데 그 활동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경우, 재정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 또는 지역적인 한계, 즉 한국에서 일렉트로닉음악으로 인정받는 것과 스페인이나 독일같은 나라에서 인정받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란 말예요, 자본적인, 인맥적인, 지역적인 한계가 있다는거죠, 이런 한계점들을 타파할 수 있는 음악마켓을 만들게 된 겁니다.
 
이뮤직마켓은 글로벌 음악 마켓이라 얘기를 하는데, 예를들어 백화점을 상상하시면 될꺼에요, 백화점에는 1층에는 화장품 팔고, 2층에는 옷팔고, 지하에는 음식점 뭐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메뉴 구성들이 좀 다양해요,
eMUSICMARKET.com은 멜로디, 가이드, 데모, 미발매음원 등의 아이디어부터 완성된 곡까지 "음악/곡" 자체를 사고 팔 수 있는, 아마추어/세미프로/프로 음악인들과 음악, 게임, 영화, 광고, 방송, 연극, 미술, 무용등 음악이 사용되는 모든 매체를 연결하여 음악의 판매 및 구매를 중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 독일, 영국,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연계하는 ‘글로벌 음악 오픈마켓‘이며
 
내부 구성은
 
1. 음악창작자(학생/아마추어/세미프로/프로)와 미디어제작구매자
(음악/영화/광고/게임/연극/무용/방송등 음악이 사용되는 모든 장르)를 대상으로 한 음악 독점사용권 중개 글로벌 오픈 마켓
 
2. 교육기관에서 교육중 발생되는 음악 콘텐츠의 판매루트를 제공하고, 각 학교홍보 및 상호간의 교류를 진행
 
3. 맞춤형 음악소스 제작을 위한 전 세계 공모 및 교차네트워크를 제공, 중개
 
4. 리쿠르트를 통한 인력 네트워크 중개
 
5. 음향, 악기쇼핑몰 및 야마하/스타인버그 공식대리점, 한국 음향예술인 협회 인증 판매처
 
6. 전 세계 이뮤직마켓 파트너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와 포럼 등의 서비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음악을 사고파는 마켓에서는, 가격 정찰제와 더불어 경매식으로 비딩도 될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고, 두 번째, 저희들이 Academy Music이라 부르는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나오는 과제라던가, 졸업작품 등의 음원을 판매하기 카테고리가 따로 정해져 있어요. 이 아카데미뮤직에서는 학교의 페이지가 구성되어 각 학교의 소개와 더불어 휘발성으로 졸업과 동시에 사라지는 음원들이 새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학교나 컨서바토리 같은 교육기관 10여 곳 이상 협약을 맺고 있어요. 그 전에는 이런 기회가 없었죠. 저희는 학창시절이 가장 많은 창의력을 가지고 여러 제약이 없던, 파릇파릇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너무나 많던 황금기라고 생각했어요. 해서 학교들과 협약을 맺어 이러한 창구 뿐만아니라 세미나라던가 교육에 관련된 부분들도 함께 고민해서 더 좋은 인력들이 더 좋은 기회를 전 세계로 얻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었죠.
 
그 외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음악과 음향의 전반적인 부분을 서비스 하는 쇼핑몰을 구축했구요, 이 쇼핑몰은 야마하와 스타인버그 공식대리점 인증을 받았어요. 이런 관계를 통해 현재 야마하/스타인버그와 컨테스트 하나를 진행하며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행사를 하고 있죠. 그리고 전 세계의 시니어 프로듀서/엔지니어들이 진행하는 블로그와 포럼이라던가 기타 서비스들이 진행 중입니다. 또한 재미있는 기획들이 몇 개 줄을 서 있어요.
 
저희는 사실 아이디어부터 음악으로 취급하는 마켓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구도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들어 저는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의 기타리프나, Eric Clapton의 Wonderful tonight같은 곡의 Solo Intro는 그 곡을 규정짓는 아이디어라 생각했거든요. 바로 듣자마자 무슨 곡인지 알 수 있잖아요. 이 아이디어에 거기에서 살을 붙이고 하다보면 하나의 명곡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편곡이 아직 덜되었으면, 구매자는 따로 편곡자를 저희 이뮤직마켓의 공모란을 통해 전 세계로 찾으면 되겠죠. 즉 저희 음악마켓은 그냥 멜로디 수준의 아이디어부터, 데모 가이드, 테마, 미발표곡이나 곡을 만들었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 하다보면 습작만 하드에 쌓이는 작품자들에게 이것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어 완성시키거나 음원의 발매를 하는 전 세계의 미디어 프로듀서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입장은 상황에 따라 상호 바뀔수 있는 가변성도 존재하구요.
 
 
최 : 대략적으로 음악을 거래하는 마켓인거군요.
 
임 :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마켓이라는게 기존 시장에서는 시디나, 디지털 싱글로 발매를 해서 유통하는, 산업구조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소비되는 최종형태인데, eMUSICMARKET.com 같은 경우는 정반대로, 산업구조의 형성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음악

관련자료

가타카님의 댓글

글 잘봤습니다.
외국에선 http://audiojungle.net/
이라는 사이트의 컨셉과 비슷한 컨셉의 사이트 인가보군요.
글에서 그동안의 삶이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하시는일 잘되실겁니다.
저작권에대한 인식도 점차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Android님의 댓글

임실장님 인터뷰 잘 봤습니다.
제가 예상도 못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네요.
마음고생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음향 얘기보다 훨씬 더 느끼는게 많은 인터뷰였습니다.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이뮤직마켓이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음악짱님의 댓글

와우 인터뷰 잘 봤습니다.
저도 에임에 세션 녹음도 하러 가고 마스터링 스튜디오 오픈 하셨을때 세미나도 참석하고 했었는데
이렇게 글로 뵈니 정말 반갑네요 그때 당시 그렇게 파란만장 하셨을줄이야
에임에 ssl 들여놨다는 소식 들었을때 그때 당시 공사 사진 올라온거 보고 우와 했었는데
그런 속사정이 있으셨다니
암튼 앞으로 좋은일들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Kyle The Gifted님의 댓글

감동적인 인터뷰입니다.
신용카드 12장에, 감리 사기당하시고 . . . 참 어려운 일들이 많으셨습니다.
나아가 SSL 거절 하신 것에서는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라 일에 대한 열정도 강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운드 좋은데 멕키라고 무시한다는 부분에서는 저도 한 때 겪었던 부분이라 웃음이 났구요.

일할 곳은 많은데 열심히 일 안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
정말 슬픈 현실입니다.

감동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을 공유해 주신 임형준 대표님과 좋은 글을 담아주신 운영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dwardGray님의 댓글

역시 많은 것을 겪어 오셨기에 이뮤직마켓이라는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시는 듯 합니다.
제일 필요하기에 제일 기발한 아이디어 같네요

겨울의끝님의 댓글

인터뷰가 업데이트되어 새벽에 읽었는데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수가 있었을까요? 속물인 저로서는 정말...
그리고 또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것 보니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이런 인터뷰 너무 좋은것 같아요

직립나님의 댓글

마스터링 녹음실이 개점 전부터 난황을 겪게 되는 대목에서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34살의 나이에 SSL 콘솔을 사고 또다시 빚더미에 오르셨다...

부산에서의 두번째 녹음실 공사에 들어간 저 역시 지금 34살인데
임형준 대표님의 글이 많은 가르침과 도전을 줍니다.
대표님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라 생각합니다.

아래는 이뮤직 마켓을 이용해 보던 중 발견하게 된 사항인데요.
이뮤직 마켓이 맥 환경(파이어폭스)에서 회원 가입 직후 공백 화면에서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사이트를 다시 로딩하여 로그인을 시도하려 해도
사이트에서 IP를 인식한 이후부터는 공백화면으로만 계속 넘어갑니다.

이뮤직 마켓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음악 아이디어부터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제 사견 입니다만 위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가치를 지닌 빛나는 하나의 모티브나 짧은 구간이라 하더라도
완성도를 이루지 않은 채 거래가 될 수 있고, 그것이 거래가 가능한
음악적 상품으로 인정받을 만한 요소마저 되어가기 시작한다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모티브만을 '선점'하는 행위는 훗날, 창작 음악 시장에서 많은
쟁점거리와 시비거리를 유발하게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음악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인정받기까지에는 그 창작의 초석이 되는 모티브의 중요성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으나 그 곡이 진정한 작품성과 완성도를 갖고 가치를 지닌 완전한
상품(음악)이 되기까지의 수많은 과정들 또한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정서에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어가기만 하는 안타까운
가이드 곡 정도를 거래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완성도 있는(팔 수 있는 수준의) 가이드 곡을 공개된 오픈마켓에 올리는
것은 제대로 된 사운드로 음악을 이미 만들어내고 있는 작업자들에게는
서로서로가 도용이나 저작권 문제에 대한 걱정이 도사리고 있게 되며,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미비하다면 '버리려고 마음 먹은 곡'에 준하는 수준의
빛바랜 곡들만이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려지게 되거나, 혹은
대개의 경우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보지 않아도 무방한 무가치한 곡들만 올려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 또한 여러 사례들을 통해 해 보게 됩니다.

현재의 이뮤직 마켓 FAQ에는 이에 대한 우려를 잠식시킬만한 충분한 설명이
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이뮤직 마켓에는 많은 순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봅니다.
의욕있는 리더의 시도는 설령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막기보다 장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록 작은 한 개인일 뿐입니다만
대표님께서 반드시 성공하시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채감독님의 댓글

저는 이뮤직마켓의 관계자입니다.
직립나 님의 글 중에 맥 파이어폭스 로그인 문제를 보고 재차 테스트 중입니다만
여러 컴퓨터에서 별 문제 없어 같은 증상을 재현할 수가 없네요.
먼저 불편을 겪으신 점 안타깝게 생각하고요
크로스브라우징의 문제가 늘 생길 수 있어 항상 많은 테스트를 거치면서 업데이트 중입니다만
요즘의 인터넷 환경은 정말 정답이 없는듯 하네요.
이 밖에 이뮤직마켓의 기능과 효용성에 대해 언급해주셨는데
정말 많은 관심과 고민 뒤에 꺼내놓은 우려인듯 하여 감사히 읽었습니다.
동감하고요, 분명 역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곳은 아니며
오히려 음악산업 전반의 긍정적인 동반성장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마켓을 마련한 것이니 만큼
완벽하지 못한 출발이지만 꾸준히 가보려 합니다.
첫 출발의 걸음마에 힘을 싣는 응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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