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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팩토리 박종희 대표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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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팩토리 박종희대표님 인터뷰

 

 

최: 오디오가이 사이트의 오랜 회원이시기도 하시지요. 

 

박: 안녕하세요. 레코드 팩토리 대표 박종희 입니다. 

 

최: 네, 반갑습니다. 대표님 이야기좀 해주세요.

 

박: 저는 어렸을때부터 피아노를 쳤었고, 한때는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별로 그게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그때는 피아노 연주를 즐기면서 하는게 아니라, 시험이나 콩쿨을 바라보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뒀죠. 그 외에도 오히려 연주하는 것 보다 저는 어릴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었거든요. 요즘 세대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예전에 GW Basic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초등학교때부터 그런걸로 음악 만들고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때도 곡만드는거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구요.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그때는 입시를 하느라고 손을 잠깐 뗐었어요. 그때는 음악은 듣기만 열심히 들었었습니다. 저는 초, 중학교때 흑인음악을 그렇게 좋아했었어요. 제 나이또래 사춘기때가 흑인음악 전성기였어요. Babyface 사단, David Foster 사단 뭐 이렇게 해서.. 락에서 흑인음악으로 바뀔 시기였어요. 그때 R&B도 많이 들었고, 정말 흑인음악에 미쳐 살다가, 고등학교때는 Speed Metal 좋아했었구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Rush 나 Dream Theater 같은 프로그레시브도 많이 들었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나 음악 들어’ 하는 사람들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양하게 음악을 많이 들었었네요. 요즘은 사실 멜론이나 그런 음악 사이트들 팝 차트 보면 1년째 팝 차트가 거의 변함이 없어요. 1년전 탑텐이 지금도 탑텐이고.. 그렇게 흐름이 잘 바뀌지 않죠. 그런데 오히려 그때는 정보를 얻는 루트가 한정적이었다는게 오히려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요새는 스트리밍 1위부터 100위까지 쭉 걸어놓고 다운받거나 듣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상위에 있는 곡들이 변하질 않죠. 

 

아무튼 고등학교땐 그렇게 음악을 많이 듣다가, 대학에 와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어요. 공학부에서. 학교공부를 그렇게 잘 하지는 못했구요 (하하). 다만 왜 그런거 있잖아요. 옛날에 중고등학교때 피아노 쳤다고 하면 괜히 밴드에 와서 한번 쳐보라고 하고. 꼭 그러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귀가 얇아져서.. 친구따라 강남간다는데 전 친구따라 낙원에 갔죠. 남들보다 늦게요. 친구가 기타 사러 간다고 해서 따라 간거였는데, 이제 저는 파트가 키보드니까 아무래도 신디사이저 같은 데 관심이 쏠리더라구요. 그때 악기사에 Korg Trinity 한대가 있었는데, 건반을 딱 누르는 순간 와… 거기에 이제 사람이 미친거에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이 나요. 저는 뭐 카시오나 가정용 건반만 쳐봤지 신디사이저는 처음 접해본거였는데 그 소리에 완전 충격을 받았던 거죠. 저는 어떤 것에 한번 꽂히면 정신 잘 못차리고 미치거든요. 그당시 가격이 150만원이었어요. 어마어마했죠. 당연히 쉽사리 사지는 못하고 배우는걸 동경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다른 신디사이저를 좀 만져보고.. 사람들 왜 처음에 카메라 시작하면 사진보다 카메라에 관심이 더 많잖아요. 저도 비슷한 맥락으로 갔어요. 엉뚱하게 연주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이게 그냥 너무 이뻐보이고 좋아보이는거에요. 그러다 이른바 인생의 신디사이저라는걸 중고로 하나 샀는데 커즈와일사의 K2000 Rack 이었어요. 그게 중고로 30만원인가 35만원인가 했는데, 그걸로 소리만들기를 시작했죠.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매뉴얼을 보면서 연주보다는 소리 만들기를 먼저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게 너무 충격적이었죠. 저는 기초 음향을 사실 K2000으로 시작했어요. 거기 안에 나름대로 프로세서들이 다 들어있었거든요. 특히 커즈와일의 리버브가 굉장히 좋았었어요.  

 

최: 맞아요, 우리가 알고있는 시그널 프로세서들이 다 들어있었어요. 특히 커즈와일 리버브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들어있었죠.

 

박: 사실 K2000 으로도 사운드 엔지니어 수업을 할 수 있어요.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 엔지니어 과정에서 4회차 수업 같은 경우 신디사이징을 배우는 수업인데요, 그때는 실제로 subtractive 신디사이저를 사용해서 수업을 해요. 오실레이터와 필터에 의한 여러가지 음의 성분 생성과 shaping, 그리고 볼륨 envelope 등의 개념에 의해서 음색이 결정이 된다, 뭐 이렇게요. 

 

최: 배음 이라는단어, 저도 예전에 신디사이저를 사용하면서 처음 알게됐죠. 전 Korg M1 이라는 기계에서 envelope 가 무엇인지, 배음이 무엇인지, 하모닉스,  resonance, 그리고 소리가 어떻게 시작되서 어떻게 끝나는지… 지금의 엔지니어의 기초를 그 악기로 인해서 그때 알게 됐어요. 완전 푹 빠져 살았었어요. 

 

박: 와, 몰랐던 사실입니다.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때 가상악기의 개념이 없었을때 Korg 에서 MS2000이라는 랙이 나왔었어요. 가격도 엄청 쌌었죠. 그걸로 기본적인 원리를 많이 배웠었구요, 진짜 subtractive 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져서 modulator는 어떻게 돌아가고.. 그게 근데 소리가 플라스틱같은 느낌의 차가운 소리였어요. 그게 또 매력있었죠. 그렇게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음악 만드는데 관심이 가더라구요. 저는 또 곡 만들기가 어떻게 보면 소리를 만들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로… 곡을 위해서 소리를 만드는게 아니라 만든 소리를 쓰고 활용하고 싶어서 곡을 만든 케이스였어요. 

 

군복무를 하고 난 후 주먹구구식으로 음향을 배워보자라는 생각에.. 기억하시련지 모르겠지만 제가 2000년도 초반에 제대하고 처음 오디오가이 크리스마스 모임할때 장인석 선생님 댁에서 와인파티 비슷한걸 한 적이 있어요. 너무 옛날 일이긴 한데 그때 최대표님도 잠깐 었어요. 이후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2003년을 기점으로 그때 정말 홈레코딩이 붐을 일으키죠. 최대표님이 수석기자로 계셨던 Sound & Recording 덕에.. 그게 정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걸로 인해서 홈레코딩이라는 저변이. 엄청나게 확대가 됐고, 저도 이제 소리만 만지는걸 떠나서 곡을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홈레코딩을 접한거죠. 누구나 썼던 웨이브 터미널 2496, 와미렉24, 만국민의. (하하) 그리고 그때만 해도 컴퓨터로 뭘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까, Korg 사에서 외장 레코더로 나왔던 D1600. 거기까지가 이제 시작이 됐었고. 그때부터는 신디사이징으로 소리를 만드는 것 뿐만이 아니라 녹음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지고.. 심지어 신디사이저로 소리를 만든 이후에 나중에 믹싱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또 이런식으로 소리를 만들어 나갈수도 있구나, 이제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엄청 생겼죠. 전 어떻게 보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초창기에는 음악 자체보다 소리에 정말 관심이 많았어요. 

 

최: 그게 왜 부끄러운 건가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박: 그게 어떻게 보면 소리라는게 결국 음악을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전 약간 주객이 전도됐었어요. 소리에 완전 꽂혀서요. 온갖 시도를 다 해보고.. 그때가 과도기였어서. 카세트 테입 레코더도 써볼 수 있었고 여러가지 주변기기들을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는 시대였죠. 시대를 잘 타서 좋은 공부를 해볼 기회가 있었네요. 그러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유학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당시에도 음향을 가르치는 좋은 교육기관들도 많았는데, 뭐랄까, 좀 전부다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에 특화되어있지, 소리의 본질을 공부하기 위한 과정은 잘 없더라구요. 그래서 봤을때 무언가 다 그냥 기술을 익혀서 스튜디오 인턴과 어시스턴트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많이 있는데, 소리라는 것 자체를 본질적으로 공부하려면 공학으로 가버리거나.. 뭔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게 우리나라엔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신중하게 찾다 보니까, 캐나다 밴쿠버에 밴쿠버 필름 스쿨이라는 학교가 있었어요. 거기에 Sound Design for Visual Media, 영상을 위한 사운드 디자인,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커리큘럼이 너무 맘에 들었던 거에요. 

 

최: 커리큘럼의 어떤 점이요? 

 

박: 정말 소리의 원론을 파고든다는 점에서요. 일례로, 입학하자마자 처음 배우는게 Reason으로 신디사이징을 먼저 가르쳐요. 이걸 저희 레코드 팩토리에도 많이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Reason에 Subtractor 라고 monophonic subtractive 신디사이저가 있거든요. 그 신디사이징을 배우고 제일 처음으로 한 프로젝트가, 밴쿠버의 지하철은 skytrain 이라고 있는데, 야외 지하철 역에 캠코더를 들고 서있으면 저 멀리서 지하철이 위이이이잉 하고 들어와요. 그래서 칙 하고 딱 선 다음, 띵동 한다음 덜컥 문이 열리죠. 그럼 선생님이 열차를 타고, 또 다시 벨이 울리고, 문이 닫히고 또 다시 윙 하면서 출발을 해요. 이 다음 역까지 가는데 구간이 터널이 한번 있고, 다리를 한번 건너요. 전형적인 지하철이죠. 그리고 다음역에 도착해서 벨이 울리고 문이 열리고 내려요. 그리고 나서 그 녹음된 영상에서 소리를 다 지워요. 그 모든 소리를 subtractive 신디사이저만 이용해서 만들어야 해요. 첫 프로젝트가 그거에요. 신디사이저를 처음에 확실히 가르쳐 주는거죠. 저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독학으로 파고든 내용들이, 한달 교육으로 다 해결이 되니까.. 사실 처음에는 좀 억울했어요. 저는 4년을 신디사이징을 했는데, 막상 와서 한달 교육을 받으니까… 도대체 내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최: 교육의 차이가 그정도로 크군요. 

 

박: 정말 그 정도로 충격이 컸죠. 그리고 저는 그 프로젝트가 너무 좋았어요. 팀 프로젝트였는데, 한 3분짜리 영상인데 한사람씩 파트를 맡아요. 전 엔진을 맡았었고, 누구는 공명음만 맡고, 또 한친구는 벨소리, 문열리는소리, 이런것들을 각자 만들어서 콜라보레이션을 하는거에요. 그걸 한달동안 만들고 그러면서 소리의 원리에 대해서 엄청나게 배우는 거죠. 어떻게 소리가 이루어져 있는가를 다 익힐 수 있는거에요. 예를 들어 제가 모터 사운드를 만들잖아요, 그럼 이 전기 모터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원리를 분석하면서, 시작하는 피치 음이 뭘까, 이나라에서 쓰는 전기와도 연관이 있을텐데, 이런것부터 시작을 해서 와인딩 되는 음, 이것들을 쌓아 나가면서 레이어로 만들고.. 처음에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는 이게 과연 될까 싶은데, 한달 지나서 완성하면 정말 소름이 쫙 돋아요.

 

최: 그런데 처음에 학생들이 와서 바로 이걸 다 만들 수가 있게 되나요? 

 

박: 신디사이저에 관한 교육을 일단 완벽하게 시키는거죠. 그리고 VFS 같은 경우에는 지금도 악명이 높은데요, 거기는 입학시험을 볼때 집이 어디냐고 물어요. 어딘데? 했을때 그게 걸어서 얼마나 걸려? 하고 물어요. 지하철 타고 20분이야, 라고 하면, 멀다고 학교 못다닌다고 이사하라고 해요. 무조건 집이 도보 10분 이내에 있어야 한다고요. 실제로 거의 월화수목금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나오는 과제 양이 말도 안되게 많은데.. 전 그당시에 짧은 스키 타는걸 좋아했거든요. 근데 학교가 그러다 보니까 전 학교 때문에 밴쿠버에서 두시간 반밖에 안걸리는 휘슬러를 한번도 못가봤어요. 방학도 없고.. 그정도로 일정이 빡빡했죠. 

 

최: 와.. 놀랍고 대단하네요. 

 

박: 그 학교에서 단점이라고 치면, 아무래도 필름 스쿨이다 보니 소리를 뮤직 프로덕션에 활용하는 건 커리큘럼에 아예 없었어요. 오직 영상 미디어를 위한 사운드만 배웠죠. 물론 나중에는 샘플, 레코딩 테크닉, 필드 레코딩도 배우긴 했지만 음악 프로덕션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공부를 하면서 느낀건 포스트 프로덕션이 확실히 자유도가 높아요. 저도 그당시 프로덕션을 책으로 공부했지만, 책은 자꾸 뭘 외워서 지정을 하게 하잖아요. 기타를 녹음할때는 프렛과 바디가 만나는 지점에 몇cm 무슨 각도로 무슨 마이킹을 해라,  피아노는 예를 들어서 뭐 4006을 몇미터 거리로 어떻게 해라… 그런데 포스트 프로덕션은 그런게 없어요. 완전히 열린 분야거든요. 심지어 그 영상을 분석하고 스토리텔링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그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영상을 알아야 구도, 감독의 의미, 이런걸 아니까요. 분석을 하고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요소들을 이해해야 분석을 하니까.. 찍어 봐야 알겠는거죠. 

 

또 그 학교가 매력있었던게 정해진 답을 가르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폭탄 소리를 녹음할때는 무슨 마이크로 몇m  밖에서 어떻게 녹음해라, 이런걸 어떻게 정의하나요. 이건 영상을 보고 머리로 소리의 원리를 생각해서 창의적으로 굴려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거에요. 그래서 지금 다른 포스트 프로덕션 스튜디오들과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prop lab 이라는게 있어요. 폴리에 쓸 잡동사니들을 모아두는 큰 방, 그 방에서 무언가를 찾는거에요. 그래서 제 포트폴리오 같은 경우는 소니의 광고가 제 포트폴리오였는데, 그건 영화 트랜스포머가 나오기 전의 트랜스포머였어요. 즉, 게임기가 카메라로 변하고, 그게 또 뭘로 변하고, 이게 굉장히 스타일리쉬하게 지나가는거였는데… 이런 사운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이 없죠. 그럼 그 창고에 들어가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거에요. 아니면 신디사이저를 활용하거나, 둘 다 이용하거나. 정말 그 소리라는것을 공부하는 데는 엄청나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때 저도 생각이 조금 바뀌던 게, 항상 모든 책들은 답을 주려고 했었는데 그런 답들이 과연 거기에 굳어 있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에요. 솔직히 그때 제가 영어 실력이 좀 부족하고 한계가 있었어서 100프로를 얻어오진 못했지만, 그 학교를 다니면서 얻은 소득이 하나 있다면, 소리라는것은 외워서 접근하는게 아니구나, 그거 하나는 얻어온 것 같아요. 외워서 답을 구하는게 아니라, 완전히 답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거라는걸 배웠어요. 하물며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확고한 시각적 미디어에 대한 소리 디자인도 그렇게 하는데.. 그렇게 창의적이고 시각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을 왜 답을 지정을 하냐 이거에요. 아이러니 하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죠. 하하, 이런 이야기는 또 처음 하네요. 

 

최: 그렇군요. 너무 재밌네요. 완전 쏙 빠져들고 있습니다. 

 

박: VFS를 졸업하고, 그당시 저희 가족 모두 영주권이 신청된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취직을 노려서 작은 포스트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폴리 어시스턴트 정도로 일을 하다가.. 가족 모두가 영주권이 발급되었는데 저만 군대를 갔다와서 발급이 안된 거에요. BC 주가 재밌는게 군복무를 하고 오면 가족의 일원으로 보지 않고 독립적인 가장으로 보더라구요. 아무튼 그래서 그때 방황을 좀 했었어요. 영주권이 있으면 취직이 용이한데..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방황을 하면서 있다가 제가 미국에 아는 형이 한명 있었는데, 그 형이 미국에 넘어와서 앨범 작업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랫동안 멀리 했었던 뮤직 프로덕션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 재미를 느꼈죠. 전 녹음이나 믹싱보다도 앨범을 만들어 나가는데서의 디렉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티스트와 여러가지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경험을 처음 했던거죠. 레코딩이라는게 역시 답을 정해놓고 하지 않고 아티스트와 협업을 해서 무언가를 만드는게 이렇게 재밌는거구나. 라는걸 또 알고. 그러다 그때 운이 좋게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Expression College for Digital Art 라는 학교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그 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열심히 학창시절을 다시한번 시작하기로 했죠. 제가 그 학교 역사상 세번째 유학생이었어요. 그때가 26살이었어요.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제일 어렸어요. 다들 이미 학사 끝내고 다른 일 하다가 오고.. 다 그렇잖아요. 다 똑같아요. 하하. 

 

거기도 음향을 주로 하는 학교였는데, 전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로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때 제가 우상으로 삼았던 분이 박상욱 엔지니어님이셨어요. 내쉬빌에서 한국사람이, 그 말도 안되는 백인 사회에서 혈혈단신으로 가셔서 학교를 졸업해서 자리를 잡으시는걸 보고 용기를 굉장히 많이 얻었었거든요. 결국에는 노력을 하면 되는거구나, 하고. 또 되게 황당했던게 학교 처음 들어가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데 OT를 파티처럼 해요. 음악 시끄럽게 틀고.. 학과장이 완전 반 히피였거든요, 막 학교 내에서 킥보드 타고 다니고. 근데 학과장이 와서 하는 말이, ‘지금 여기 와있는 사람중에 레코딩 엔지니어에 관심 있어서 온 사람 있냐’, ‘앞으로 이 학교를 졸업해서 레코딩 스튜디오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 라고 물어봤어요. 미국 애들은 또 의사표현 확실하잖아요. 다들 yeah~ 이러면서 대답했죠. 그랬더니 그 학과장이 정확하게 ‘You guys are so fucked up’ 이라고 했어요. 너네 완전 망했다고. 니들이 지금 2006년이고 학교를 졸업하면 2008~9 년인데, 그때쯤 여기에 남아있는 스튜디오가 있나 봐라. 하나도 없을거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씬이 점점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대형 스튜디오는 살아남기 힘들다 이거죠.

 

최: 우와.. 쎄네요. 아예 입학할때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니. 

 

박: 네, 근데 소름돋는게 유명한 스튜디오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었어요. 정말 다 없어지더라구요. 입학할때 학과장이 이야기를 했던게, ‘내가 너희들을 취직시키기는 어렵다. 그런데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가르쳐 줄 수 있다.’ 고 말했어요. 전 분명 전공이 Sound Art 였어요. 음향예술, 뮤직 프로덕션. 사운드 엔지니어 공부하러 간건데, 그 학교 2년 반 다니면서 막상 사운드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 배우고 나머지는 다큐멘터리 촬영하고.. 그런 영상 컨텐츠 제작법을 가르치더니 스크립트 쓰는법, 단편영화 이런걸 만들고. 이 수업을 사운드 전공생들만 듣는게 아니라 비주얼 아트 전공하는 학생들도 섞어서 그룹을 짰어요. 그러면서 너희들끼리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서로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가르쳤습니다.  2006년에. 8년전에… 그때 어도비 4종세트라고 불리는 포토샵, 인디자인, 일러스트레이트, 플래시.. 기본 등등 이런걸 꽤 깊게 가르쳤어요. 사운드 전공생들한테. 하하. 그때 좀 찜찜해 하면서 난 소리 배우러 왔는데 왜 이런걸.. 이라고 생각을 못버렸었는데, 한국사람들 마음에 안들어도 또 하라면 하는 성질 있잖아요. 그 기질을 발휘해서 하라니까 열심히 했죠. 그래도 어쨌든 재미는 있더라구요. 심지어 색채학, 타이포그라피.. 이런것들도 가르쳐요. Python 같은 프로그래밍도 가르치구요. 제생각에는 그런걸 다 가르쳤던 이유가 어쨌든 너희들은 협업을 해야되고 아니면 혼자 다 해야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여기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 된다 라는 커리큘럼이었어요. 음악에 대한 교육을 먼저 하는게 아니라, 음악에 활용되는 전반적인 미디어에 대한 교육이 선행이 되는거죠. 

 

최: 정말 대단하네요. 지금의 현실을 보면 선견지명이 있었네요.  

 

박: 결과적으로는 제가 지금 이렇게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엄청나게 큰 계기, 기반이 된 것 같아요. 사실 막상 사운드 엔지니어링 그 자체의 교육 퀄리티에 대해서는 큰 감흥이 없었어요. 그냥 뻔했어요. 물론 그래미 수상 엔지니어들이 와서 강의도 하고 마스터 클래스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거장들이 와서 뭘 했을때 저는 Manny Marroquin 이 한 얘기중에 기억에 남는게 하나밖에 없어요. 누가 매니한테 믹스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게 뭐냐, 하고 물어봤을때 매니가 음.. 하고 생각하더니 ‘전날 밤에 한 믹스를 다음날 아침에 들을때?’ 라고 한거, 그거밖에 기억이 안나거든요. 하하. 전 Joe Chiccarelli를 보고 많이 배웠는데요. 세션을 3-4번 쭉 같이 진행하면서 보고 느꼈던게, 이사람이 뭐 대단한 테크닉을 구사하는게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아티스트를 정말 편하게 대하더라구요. 아티스트 입장에서 보면 그냥 학교에 선생님으로 있기 때문에Joe Chiccarelli 랑 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건데, 어떻게 보면 완전히 마이너 아티스트인데도 최선을 다해서 좋은 소리를 나오게 하는거에요. 막상 믹싱 단계는 러프 믹싱 단계가 거의 발매에요. 우리가 그래미 엔지니어라고 얘기하면.. Tony Maserati 가 Waves에서 자기 이름 건 플러그인을 내놓으면 정말 그 사람이 그 플러그인을 쓸까요? 안써요. 겉으로 보이는 테크닉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아티스트를 다루는 본질, 그런걸 많이 배웠구요. 작업을 하는 방식이나 관점의 차이,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소리가 좋지? 를 연구한다기 보다 어떻게 하면 음악이 좋지? 를 연구하는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친구들이 대단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 문화에 대한 관점과 주관이 있다 보니까 굉장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송메이킹이 가능하더라구요. 그런걸 많이 배웠어요. 탁 깨는 무언가가 있어요. 

 

사진도, 색감 쨍하고 노이즈 없고 샤프하고.. 이런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진짜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라 사진이 어떻게 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또 사진가의 감성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건가가 중요한 거거든요. 그런데 음악씬이 똑같이 흘러가는 느낌이 있더라구요. 제가 엔지니어링 작업을 그렇게 많이 한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씬이 돌아가는 구조를 봤을때 무언가 음악으로써의 본질을 찾는게 아니라 소리가 좋다 라는 그 기준이 음악적이지 않고 대신에 얼마나 깨끗하냐, 얼마나 distortion 이 없냐, 또 이건 제가 정말 싫어하는 단어지만 얼마나 댐핑감이 있냐 하는.. 이런게 좋은 소리의 절대적인 기준처럼 보여지고 있다는게 좀 안타깝더라구요.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 정말 중요한건 이게 아닌데.

 

저는 믹스 수업을 할때, 넵튠스가 프로듀스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세뇨리타 라는 곡으로 수업을 하는데요. 그 곡이 사운드만 들으면 엉망진창인 것 같아요. 헐렁헐렁 한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대형 기획사에서 A&R 활동 하시던 분도 그당시에 수업을 들으셨었는데, 그 노래 듣고 ‘이거 데모에요?’ 라고 하시더라구요. 헐렁하고, 빈느낌도 강하고, 사운드도 형편없는 것 같은데, 무언가 굉장히 메세지가 강하게 오거든요. 그래서 제가 소리의 시각이미지화 수업에 그 노래를 씁니다. 처음에 그 노래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시각적 이미지를 10개 이상 서술하게 해요. 무엇이든 좋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보면서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보면서. 주황색이다, 담록색이다, 해변같다, 도심같다, 허름한 바 같다, 등등. 그런데 그 곡을 들으면 학생들이 항상 이야기를 하는게 ‘어 이거는 왠지 주황색 같아요’ ‘멕시코 해변가 같은데요?’ ‘나무로 지어진 창고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두번째 들으면서 그 악기들이 스피커 사이에서 3차원적인 이미지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그림으로 그리게 하죠. 이 두가지를 엮었을때, 과연 이 아티스트, 프로듀서, 엔지니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 같은지를 이야기로 서술하게 합니다. 대부분 나오는 이야기가, 건달들이 황량한 길거리를 걸어다니다가 아주 허름한 바 같은곳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며 여자들을 꼬시다가 무대에 올라가서 잼 하는 것 같다, 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리고 나서 뮤직비디오를 보여줘요. 뮤직비디오가 딱 그 내용이거든요. 뮤직비디오 자체가 주황색 톤에, 옛날 60년대 캐딜락 같은 담록색 차가 들어와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친구들이 내려요. 건들건들 하면서 해변가에 있는 바에 들어가는데, 나무로 지어져 있고, 허름한 무대에 허름한 드럼세트와 아주 오래된 키보드가 놓여져 있어요. 저스틴이 여자들을 꼬시다가 ‘야 저기 올라가서 잼이나 한번 하자’ 하고 무대에 가서 잼을 하는데 그게 그 노래에요. 그 사운드를 들었을때 소리에만 너무 익숙한 사람들은 사운드 개판이다, 이게 뭐냐, 데모다, 편곡 엉망이다, 라고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건 그 음악의 본질입니다. 본질적으로 스토리를 이해를 하고,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 소름이 듣는 거죠. 완벽한 기획이었죠. 넵튠스 성격상 아마 그자리에서 녹음했을 가능성이 99%에요. 그 자리에 있던 그 허름한 드럼키트로 진짜 녹음 했을거에요. 이게 절대적 기준에서 좋은 사운드는 아니지만, 본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그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한 거죠. 이게 큰 차이더라구요. 아직까지 우리나가라 미치지 못한게 이런 부분인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부분. 

 

최: 우리 케이팝이 사운드만으로는 때론 미국 팝보다도 소리적인건 더 좋게 들리는 것 같아요. 단지 소리적인 것만 따지자면요. 

 

박: 사실 그부분에 대해서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또 자랑스러워야 할 부분인게, 미국 애들이나 선생님들한테 우리나라 케이팝 사운드 들려주면 기절해요. ‘이거 지금 사람이 한거냐?’ 그래요. 이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 이런 사운드가 나올 수 있냐고. 그정도로 또 기술적으로는 완전히 극을 찍고 있죠. 그런데 뭔가 이 땟갈좋은 음악을, 사운드를 들으면서 무엇을 얻지 못하는 것은, 엔지니어나 프로듀서나 무언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생각도 할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U2의 앨범을 들었을때 순수하게 “사운드 퀄리티”가 좋은 앨범은 별로 없어요. 

작년 10월에 저희 레코드팩토리와 기어라운지가 함께 스티브 릴리화이트를 초청한 적이 있어요. 그래미를 5번이나 수상한 엔지니어가 무료세미나를 했는데 40명밖에 안왔었어요. 뭐 저희야 좋았죠. 그 거장을 모시고 저희끼리 단촐하게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하하. 그때도 주된 질문들이, 음악을 만드는 방법론적인 면과 사운드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어요. 릴리화이트씨가 굉장히 온순하시고 엄청 쿨하신 분인데, 조금 짜증을 내려고 하셨던 부분이 질문들의 초점이 다들 음악보다는 사운드에 맞춰져 있었어요. 결국 릴리화이트씨가 나중에 사운드, 소리가 중요한게 아니라, U2라는 슈퍼밴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에너지를  어떻게 전달을 하냐 가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라고까지 하셨었어요. U2는 거의 isolation 녹음을 안하구요, 합주실에서 한방에 녹음을 해요. 보노는 여태까지 모든 엘범에 우리가 흔히 쓰는 SM58 을 사용해 왔어요. 합주실에서 녹음을 하면 그 앨범이 발매가 되는거에요. 그 이유는 물론 - 따로따로 받아서 녹음하면 음질은 조금 더 좋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음악적인 에너지를 잃어버릴텐데. 영혼 없는 음악이 될텐데. 라고 릴리화이트씨도 말씀하셨었어요. 그게 아주 큰 교훈인것 같아요. 물론 아티스트의 음악적인 에너지나 열정을 최대한으로 담아나기 위해서는 음향에 대한 지식도 당연히 엄청나게 튼튼해야 하죠. 너무 당연한 건데, 너무 정해진 답을 찾는게 주가 되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최: 맞습니다.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음악의 본질을 아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레코드 팩토리에서도 학생들에게 이런 커리큘럼으로 가르치시는걸로 알고 있는데, 이어서 레코드 팩토리에 관련된 이야기도 좀더 부탁드려요.  

 

박: 네, 저희 레코드 팩토리는 툴만 다루는 과정은 없어요. 워크샵이 총 13개인데, 저희도 로직이나 큐베이스 과정이 있지만 툴의 사용법만 가르치고 시험을 보고 그런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다만, 로직과 큐베이스 과정을 컴퓨터 뮤직 프로덕션 과정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커리큘럼의 방향도 그렇고 툴만 다뤄서 툴이 음악을 만들어 주는 그런식의 교육이 아니라, 툴을 활용을 해서 실질적인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Ableton Live 과정도 있지만, 이게 사용법을 배워서 이걸로 자격증 시험을 보는게 아니에요. Ableton Live 가 가장 잘 사용될 수 있는 EDM 장르, 그 장르의 음악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내는게 중요하지, 툴의 사용법에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툴이라는 것은 프로덕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거라고 생각을 해야지, 이걸 익히고 시험을 보고 나서 툴을 쓴다고 해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기존 교육의 문제점이랄까.. 이런 것들을 저희도 개선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엔지니어 과정 같은 경우에도 저는 프로툴을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면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 하고 생각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되는 거죠. 프로툴을 물론 잘 다뤄야 하지만,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과정이 단순히 프로툴을 잘 다루는 프로툴 오퍼레이터를 찍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이 사람이 실제로 아티스트와 같이 호흡을 하면서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엔지니어 과정 커리큘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물론 처음에 기초 음향 이론도 다른곳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게 교육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구요. 등한시 하기 쉬운 칼리브레이션이나 기준레벨, 최적레벨에 대한 개념같은 아주 기본이 되는 내용부터 꼼꼼하고 튼튼하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프로툴 수업은 4번밖에 없어요. 4번동안 뮤직 프로덕션에 대한 프로툴 테크닉들을 지각적으로 가르쳐 주고, 대신 맥북과 프로툴을 3개월동안 줘요. 연습은 본인이 해야하는 거거든요. 프로툴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시기는, 과정 후반부에요. 그때 앨범작업을 진행을 합니다. 실제로 아티스트와 함께 앨범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툴의 몰랐던 새로운 기능들도 스스로 깨달아 나가게 되어요. 결정적으로 아티스트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디렉팅을 하는 걸 배우는거죠. 사진에 비유를 하자면, 사진도 어디서 배울때 너무 카메라와 렌즈 사용법에 집중을 한다는 거에요. 진짜 중요한 것은 사진을 어떻게 볼것인가, 좋은 사진은 무엇인가, 이거거든요. 

 

저희 레코드 팩토리 처음 수업 12시간정도 분량이 그런 과정들이에요. 요즘 뮤직 프로덕션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엔지니어가 엔지니어 역할 플러스 프로듀서 역할도 수행해 내야 하는 것, 그런것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소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진행하는 엔지니어 클래스 과정의 경우도, 가르칠 때 피아노 레코딩 방법이라고 해서 답을 절대 주지 않아요. 그런건 절대 없어요. 표준적인 방법은 물론 있을 지 몰라도, 오히려 학생들일수록 그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피아노에 무슨 마이크를 대야 한다 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음악이라는 범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악기가 어떤 그림으로 표현이 되는지, 어떤 음악에서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이런 발상을 먼저 해야 하는 거죠. 생각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정석에 비해서 다소 형편없을 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사람이 자기 소리를 만들어요. 장기적으로 나아가서 독립된 프로듀서로 활동하려면정해진 답만 외우는 어프로치 보다는, 본인이 무언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쪽으로 어프로치를 하는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참 그런게 어렵죠. 저는 며칠 전에 저희 스튜디오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뮤직비지니스과 학생들과 함께 특강을 했었는데요. 강의 후에 제가 학생들보고 질문할 것 있으면 하라고 하면서 말한게 있어요. 질문은 내가 오늘 강의한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어도 괜찮다. 질문을 할때는 무엇을 질문해야하는지 절대 생각하지 말고, 본인이 그냥 밤에 잠이 오지 않을때 들었던 생각이라던가 연애상담도 괜찮다, 라고 했어요. 학생들이 너무 질문할때 답을 생각하고 질문을 하니까 머리도 복잡하고 사고가 한정되니까 그런거에요. 질문의 내용이나 답에 구애받지 말고 아무거나 질문 해 보라고 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피아노 얼마나 해요? 라고 묻더라구요. 또는 실례되는 질문인데 한달에 어느정도 버세요? 라고 물어보는 학생들도 있고. 학생들은 항상 질문할때 내가 오늘 강의 한 내용 안에서 질문거리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너무 고민을 해서 사고의 폭이 줄어요. 그래서 전 항상 강의를 하면 끝나고 나서 음악과 사운드에 아무 상관없는 질문이나 하라고 하는데, 결국 음악에 관련된, 강의에 관련된 질문을 하긴 해요. 

 

박: 저에게도 정말 많이 와닿는 말이네요. 저도 처음 레코드팩토리를 시작하게 된게 인턴들을 받다가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당시 인턴들이 들어오는데 다 사고가 굳어있는 거에요. 이렇게 설명할게요. 이거 돌리고, 이걸 누르고, 이건 이러니까 저걸 돌려보세요, 저건 올리고, 저거는 저런거니까 이렇게 누르고. 자 이제 해보세요, 라고 했을때 당연히 잘 하죠. 그런데 상황을 1프로만 바꿔버리면 건들지 못해요. 학생들이 특히 음향이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장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제가 이건 이렇게 올리고 저건 돌리세요 했을때 질문을 했어야 해요. 왜요? 라고. 그런데 그걸 하기는 커녕 그냥 설명 자체를 시험 답안 작성하듯이 외워버리는거죠. 

 

최: 그래서 교육이라는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우리가 또 어릴적부터 그렇게 교육받아 왔잖아요. 왜요? 라고 묻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외우게 되요. 스스로 보고 듣고 음악을 느낄 수 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박: 예전 교육이 이런것들을 정말 많이 망쳐놓은 것 같아요. 아까 그 예시에서도, 중간에 이걸 돌리니까 이렇게 되고, 할때 왜 이렇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죠. 

 

최: 스스로가 그런걸 배우고 알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마음도 열려 있어야 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교육에 익숙하지 않죠. 젊은 세대들이 빨리 배우고 싶어하고 급하고, 마치 경주마 같아요. 놓치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런 부분을 또 레코드 팩토리에서는 생각 하시면서 교육 하시고 계시니까 저는 아주 독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 최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속이 뻥 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했을때, 100% 대표님처럼 이렇게 반응하시지 않아요. 대부분이 부정적이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맞춰놓고 빠르게 해야지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있고, 그 외적인걸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이게 제일 편하고 쉬워서 도착하게 되는 경향도 있구요. 학창시절때 너무 머릿속에 외워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있는 거죠. 

 

최: 그게 당장은 빠르지만, 롱텀으로 봤을땐 효율이 떨어져요. 같이 하는 사람들도 흥미를 더 빨리 잃어버리게 되구요. 

 

박: 그렇죠. 맞습니다. 저도 어제 제가 강의하는 사운드 엔지니어 과정에서 디지털 인터페이싱 수업을 했는데요. 정말 중요한 수업이죠 사실은. 여러가지 원리들, ADAT부터 시작해서 MADI , DANTE, 클락 시스템 등등. 물론 이론적 백그라운드 힘들고 어려운데 반드시 죽어도 알아야 해요. 모르면 큰일나는거죠. 시험을 보면 학생들이 기대하는 문제는 이런 문제에요. ADAT는 채널이 몇채널이고 그런거. 그런데 저는 퀴즈를 낼때 이렇게 내요. 상황을 던져주죠. 지금 성가대 녹음을 하는데 보컬이 마이크가 4개, 코러스가 8개, 드럼에 6개가 필요하고 언발란스 출력인 신디사이저가 2대, 발란스 출력 신디사이저가 2대. 기타는 라인으로 바로 나가면서 DI 통해서 스플릿으로 앰프1 마이크1 들어가고, 베이스도 마찬가지.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가 RME UFX 하나, Universal Audio 4-710D 한대가 있다. 예산은 1000불을 줄테니까 인터넷 검색을 해서 1000불 미만으로 장비를 구입하여 이 녹음을 가능하게 모든 디지털 인터페이싱 시스템 셋팅을 완료해라. 이렇게 문제를 내요.  그럼 처음에 학생들이 못풀어요. 그때 충격을 받아요. 내가 배웠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까 건들지도 못하는구나, 하고. 그 충격을 주기 위해 그렇게 시험을 봐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익숙해지게 세네번 정도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언젠가는 해요. 학생들이 익숙해 하면서 풀어요. 그 퀴즈를 낼때는 저도 이 학생들이 당연히 못 풀거라는걸 알아요. 6명이 있으면 여섯명 다 못풀어요.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럼 학생들이 허무해 하고 거기서 충격을 받죠.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걸 모르다니. 왜 모를까? 하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공부 방법을 바꿀 생각을 한다는 거죠. 이게 반복이 되다 보면 그때부턴 해요. 

 

최: 이야, 그건 정말 레코드 팩토리만의 방법이네요. 

 

박: 그런 식이죠. 어떤 상황이 닥쳤을때 해결 방법에 대한 솔루션. 저희가 이번에 정규과정을 144시간으로 확장을 하면서 스튜디오 디자인 클래스가 새로 생겼어요.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건데 강의시간이 너무 짧아서 못했던 거거든요. 이 클래스의 경우 여태까지 배워왔던 기초 지식과 이론에 콘솔 오퍼레이션, 패치베이, 등등 다 배운다음 팀 프로젝트를 줘요. 지금 예산이 얼마고, 이 스튜디오의 목적은 무엇이다. 아니면 너희들끼리 목적을 정해라. 그리고 스튜디오의 모든 시그널 플로우를 짜오는 거에요. 집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거죠. 공간배치, 패치 디자인 등 모든걸 전부 다 하게 해요. 이걸 모르면 나중에 이 친구들이 독립을 못해요. 평생 누군가의 소모품이 되는 거죠. 결국 알려면 이런걸 스스로 하면서 배워야 하는데…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이전에 저희 역삼동에 있던 스튜디오에 패치베이가 정말 직결로 간단했는데, 인턴에게 이걸 다 풀어 헤치고 나서 연결하라고 했을때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어요. 4년을 음향을 전공했는데. 따지고 보면 이사람들이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데, 이걸 본인이 실전에 활용하는걸 한번도 안해봐서 못하는 거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교육을 하구요. 그런 점이 어떻게 보면 레코드 팩토리가 가장 차별화 되는 점 인것 같습니다. 저희가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게, 툴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요. 물론 프로툴 - 스타크래프트에 비교하자면, 당연히 손 빨라야 하죠. 그런데 손 빠르다고 그 게임을 잘하는건 아니거든요. 이건 너무 당연한거고,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거죠. 제가 무슨 얘기까지 하냐면요, 만약 프로툴에 자신이 없으면 프로툴 오퍼레이터를 한명 고용을 해라, 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학생들에게 장비 이것저것 사라 권하진 않지만 두개는 권해요. 절대 헤드폰 듣지 말고 스피커만은 꼭 좋은거 쓰라고. 좋은 음악과 좋은 소리를 만들려면 좋은 소리가 가까워야 하죠.

 

저희같은 단기집중 커리큘럼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것들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사님들끼리도 반드시 커리큘럼 짤때는 저랑 같이 협의를 하고 저를 거쳐요. 예를 들어 어떤 강사님이 어떤 커리큘럼을 가지고 왔을 때, 저희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강사님께는 실례되는 일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전부 수정을 합니다. 그 과정을 저와 디렉터 한분이 맡고 있구요. 학생들을 툴만 아는 바보로 만들지 않고 음악을, 소리를 만들줄 아는 사람을 양성하는게 저희의 모토입니다. 주절주절 이야기가 길었네요 하하. 

 

최: 네. 오늘 인터뷰 내용이 너무 좋네요. 저도 새로운 자극도 많이 받았구요. 마지막으로 정리를 한번 해주세요.  조금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교육,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요. 

 

박: 굉장히 어려운거라고 보구요. 일단 저는 처음에 레코드팩토리를 만들때 저는 축구선수로 치면 1부리그에서는 뛰어본 적 없는 선수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좋은 감독이 될 수는 있겠더라구요. 물론 무언가를 가르치는 행위에 대한 방법론은 한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지만, 너무 거창할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부끄럽지만. 그 사람의 세계관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거라 생각해요.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사람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이요. 그렇지만 기간적인 부분이 항상 너무 아쉬워서 지난달부터 엔지니어 과정의 시간을 늘렸어요. 72시간을 가르치는게 사실 한계가 있잖아요. 더군다나 요즘 엔지니어들도 엔지니어라는 말보다는 사실 엄밀히 말하면 프로듀서적인 관점으로도 봐야 하는 시대가 왔는데, 아무래도 그러려면 실전 작업의 양이 좀 많아야 하죠. 그런데 시간의 한계가 있다 보니 여태까지 있던 수업은 머리를 써야 하는 이론적인 부분이 더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 이번에 144시간으로 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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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님의 댓글

인터뷰 내용을 통해 느껴지는 이미지는
참! 잘 가르치신다라는 것과 참 명확하시다는 것입니다.

창의력이 넘치는 엔지니어들이 많이 배출되어지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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