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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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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을 나무린님께서 운영하시는 다움의 카페인 http://cafe.daum.net/impression/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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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주장

피타고라스는 소리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한 그리스인 붕 한 사람이었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ca. 570-498 B.C.)가 소리의 과학에 공헌한 바는 주로 음악의 음정에 관한 것이다.

음정 이론은 음악학의 한 분야로서 당시에는 canonics 또는 harmonics 라고 불렀다.

8, 5, 4 도 등의 협화음정은 피타고라스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업적은 이 음정들을 정수 비례로 나타낸 점에 있으며, 이 발견은 음악 이론뿐만 아니라 피타고리안 독트린의 수리적 발전에 기여하였고, 이런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되었다.

초기 피타고라스의 실험은 협화의 판단을 귀의 감각에 맡겼다.

그러나 그후 그의 추종자들은 그 판단을 감각에 맡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학적 구현의 한 현상으로 설명하여 경험에 앞선 진리로 보려고 했다.

예를 들면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ca 536-470 B.C.)는 눈이 귀보다 훨씬 정확한 판단 근거라고 말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해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눈과 귀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한다.

이런 이유로, 아낙사고라스(Anxagoras ca 499-428 B.C.)는 진리를 감각적 인지로서 판단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어 진리는 이성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필로라우스(Philolaus)는 이에 더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수(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수를 가져야하는 이유는, 수 없이 마음으로 무엇을 파악하거나, 재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진리는 감각적 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수를 통해서 밝혀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를 이처럼 광범위한 개념 아래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아르키타스(Archytas 428-347 B.C.)가 천문학, 기하학, 수학, 음악을 수학과 인척간의 학문이라고 서술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게 된다.

피타고라스 독트린에 따르면, 기하학은 정지해 있는 크기, 천문학은 운동 중인 크기, 수학은 절대적 수, 음악은 응용적 수로 해석되었다.

플라톤(Pluton ca. 429-347 B.C.) 역시 이와 같은 수학적 이론에 동조했다.

피타고라스의 음향학 연구가 천문 현상의 개념에 미친 신념과 수의 마력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신념은 천체 운동의 조직화에 음악의 음정 이론을 적용시키기에 이른다.

천문 현상에 음정 이론을 적용시키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이 과장된 개념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한다.

피타고라스를 간접적으로 지칭하면서 그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지구 위에서, 그 운동의 크기와 속도에 있어 훨씬 작은 물체의 움직임도 소음을 내기 때문에 천체만큼 큰 물체의 운동 역시 우주 안에서 당연히 시끄러운 소음을 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며, 그들이 태양이나 달뿐만 아니라 별들 역시 그 수와 크기가 대단한 것이고 아주 빨리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큰 소리를 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고 항성이 움직인 거리로서 측정한 속도가 음악의 협화 음정과 같은 비례를 가지고 있다는 관찰로부터, 별들의 원 운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리가 잘 조화되는 음정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된다.

이 사고 방식이 그리스 시대의 음악과 항성을 연결하게 되는 사고의 연원이다.

이 사고의 구체화인 "천체 화음 이론"은 기원 후 3세기 초의 아프디시아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Aphrodisias)에 의해 정교하게 제시된다.

그는 항성이 만드는 소리는 그 운동이 느릴 경우 깊고 낮은 소리를 내고, 항성의 운동이 빠를 경우, 높은 소리를 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설명에 반대한다.

천체의 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침묵과 대조되었을 때에 들리는 것이므로, 소리는 발생 그 순간에 우리의 귀에 도착해야 하고 그래서 그에 대조가 되는 침묵과 구별되어 소리로서 들리게 되는데, 천체의 소리는 너무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의 음악은 들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체의 음악이라는 철학적 생각은 2천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후인 케플러 시대에까지 남아 그의 저서에 나타난다.

피타고라스가 음향학 이론에 남긴 업적은 음고와 현 길이 사이에 반비례가 성립한다는 사실의 발견에 있었다.

이 업적은 실험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실험의 결과보다는 수의 신비한 이론에 더 매혹되어 실험 자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실험에 대해서는 후대에 이르러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관심도 근거 없는 전설에 기초하는 것이 많다.

전설이 설명하는 바대로 실험을 해 보아도 실제로 그러한 설명이 주장한 바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시의 실험이, 상상적 실험의 상상적 결과였기 때문이다.

희랍인의 과학적 사고의 한계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큰 돌과 작은 돌을 높은 곳에서 떨어트린다는 상상을 하고 그 결과, 큰 돌이 먼저 떨어질 것이라는 상상적 결론은 내리는 것과 같다.

이런 맞지 않는 실험 중 가장 오랜 동안 믿어지던 것이 바로 망치(hammer)의 전설이다.

피타고라스가 음정의 비례를 발견하게 된 것은 그가 우연히 대장간에서, 두개의 망치가 부딪쳐 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망치의 무게의 비가 2:1이 되는 경우, 옥타브간격의 음정을 만들고, 무게의 비가 4:3인 경우, 4도 음정을 만든다는 사실은 발견했다는 것이다.

실험을 해 보면 그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망치에서 나는 소리가 그러한 음정 관계를 갖기 위한 물리적 요인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다시 말해 무게의 정수비례에 따라 음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은 더 팽팽하게 조임으로서 더 높음 음이 난다.

무거운 추를 달아 줄의 인장력을 증가시켜 더 높은 음을 낼 경우, 추 무게의 결정이 피타고라스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는 설명 역시 잘못된 것이다.

유리잔 안에 물을 넣어서 원하는 음높이를 만드는 방법 역시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것이라는 설명도 잘못된 것이다.

줄의 길이와 음높이가 반비례한다는 사실은 기원전 6세기 경 피타고라스 시대에 알려졌으나, 진동수의 개념이나 음고와 관련된 진동수의 비례라는 개념을 피타고라스가 파악하지는 못했다.

후대의 피타고라스 학파인 수학자인 아르키타스와 수학자이며 천문학인 유독수스(Eudoxus of Cnidas, ca. 408-355 B.C.)가 이 관계에 대한 수량적인 이해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테온(Theon of Smyrna, 활동 기간 A.D. 115-40)은 유독수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독수스와 아르키타스 학파들은 협화의 관계를 수로 표시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이 비례가 운동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이해했고, 빠른 운동이 날카롭고 높은 음을 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빠른 운동이 공기 속을 빠르게 전파해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느린 운동은 깊고 낮은 소리를 내며, 그 이유는 느린 운동이 둔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Hunt, 14) 이러한 생각은, 원천에서부터 강하고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는 음고가 높은 소리이고 힘없이 천천히 오는 소리는 낮은 소리라는 상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 상상은 소리를 만드는 타격의 속도와 소리의 전파의 속도를 혼동함으로서 생긴다.

또한 소리의 강도와 음고 사이의 구별이 없었던 점을 잘 보여준다.

아르키타스는 서로 부딪치는 물체의 충돌 없이 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 논의를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종결한다.

즉, "높은 음들은 빠른 운동을 하고 낮은 음들은 느린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볼 때에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리의 전달 속도가 음 높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서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이 점에 대해 두 음으로 이루어진 협화를 이루고 있는 음들이 우리의 귀에 동시에 도달되지 않으며 다만 동시에 도달한 것처럼 여겨질 뿐이라고 생각하는 저술가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분명히 파악하지 않은 채, 문제를 지각에 있어서의 동시성에 대한 논쟁으로 초점을 흐리고 만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계승자인 에레수스의 테오프라스투스(Theoprastus of Eresus, 372-288 B.C.)에 이르러 이루어진다.

그는 다음과 같이 추리했다. 높은 음의 속도는 낮은 음의 속도와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만일 그렇다면, 나중 도달한 음이 먼저 도달한 음에 겹쳐 들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협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일 협화가 있다면, 두 음이 모두 같은 속도를 가져야 한다.

1805년 앙리 하센프라츠(Henri Hassenfratz)도 같은 추리를 했다.

그러나 그는 추론을 넘어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종에서 나오는 협화의 두 음을 울리고, 그 소리를 500미터 밖에서 들었다.

이 때 협화 상태가 손상되지 않은 채 두 음은 동시에 들렸다.

피타고라스 교리로부터 남아 내려온 유산은 피타고리안 조율법에서 확인되는 음계에 남아 있다.

피타고라스 음계의 온음은 8:9의 진동비를 지닌다.

현 길이는 반비례함으로 9:8의 현장비를 지닌다.

줄 길이 전체(9)를 울린 다음 그 전체를 아홉 개로 나누어 하나를 없애고 나머지(8)를 울리면 두 음은 <도-레>의 음정으로 들린다.

피타고라스 음계의 반음(이 반음을 hemitone이라고 부른다)의 진동 비는 243:256이다.

즉, 줄 길이 전체(256)를 울린 다음, 그 전체를 256개로 나누고 그중 13개를 없앤 243개의 길이를 울리면 피타고라스 반음이 둘린다는 뜻이다.

필로라우스는 가능한 온음과 반음의 여러 순열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상행하는 순서로서 <온음-반음-온음-온음-온음-반음>의 음정 간격을 가진 음계다.

이를 피타고라스 조율법 또는 리디안 선법이라고 부른다.

피타고라스의 음계는 아리스톡세누스가 온음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자고 제안할 때까지 수정 없이 존속된다.

10:9의 작은 온음이 음계에 도입되는 것은 디디무스(Didymus)와 프톨레미(Ptolemy)의 다이아토닉 음계에 이르러서다.

한편 플라톤은 들음과 그 들음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한다.

그는, 우리가 보통 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귀를 통해 지나가는 충격이라고 설명하고, 이어, "그 충격은 공기를 통해 전파되며 뇌와 피를 지나 정신에 이른다.

들음은 바로 이 충격의 진동이다.

그 진동은 머리에서 시작되어 간에 이르러 끝난다.

빨리 움직이는 소리는 날카로운 소리이고 천천히 움직이는 소리는 둔한 소리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소리는 평탄하고 부드러운 소리이며 그 반대는 거친 소리다.

소리의 몸체가 크면 큰 소리고 작으면 그 반대다"라고 말한다.(Hunt, 19)

왜 소리를 간에서 듣는 다고 생각했을까?

그러한 우리에게 그러한 추리는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당시의 인체 해부에 대한 지식으로서는 그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장기들 중간이 가장 유동적이므로 진동을 간이 느꼈을 것이라고 상상하였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둥과 번개가 있은 다음, 우리가 듣는 일 보다는 보는 일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섬광이 먼저 있게 된다."(Hunt, 22)는 말을 했다.

그러나 소리와 빛이 전파되는 속도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18세기말에 이르러 나타난다.

빛과 소리의 속도에 대해 플리니(Pliny the Elder A.D. 23-79)는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발생했을 때에, 번개가 천둥소리가 들리기 전에 보인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데 그 이유는 빛이 소리보다 빠르게 전해오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 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해온다(travel)는 개념의 사용이다.

다시 말해, 빛이 시간 없이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속도를 소리의 속도와 비교해서 생각했다는 점이다.

플리니보다 한 세기 앞서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천둥을 듣기 전에 번개를 본다. 그 이유는 그 충격이 귀에 보다 눈에 더 빨리 도달하기 때문이다.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사람을 보면,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도끼를 내려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천둥 보다 먼저 번개의 불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소리가 충격에 의해 발생한다는 아르키타스의 생각은 고대와 중세의 모든 저술가에게 반복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소리의 발생을 위해 필요한 일은 두 개의 단단한 물체가 서로 부딪히고 또 공기에 부딪쳐야하는 것이다.

두번째 조건은 충격을 받는 공기가 충격이 있기 전에 공기가 밀려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 충격에 의해 공기가 흩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충격이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충격이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부딪친 물체에 의해 충격을 받은 공기가 벽에 부딪친 공처럼 퉁겨 나오는 운동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에코(산울림)가 생긴다(Hunt, 23)고 설명한다.

이처럼 명료한 설명을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도 곧이어 영혼에 대해 그리고 소리에 얹혀있는 사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동물이 만든 모든 소리가 다 목소리(voice)가 아니다.

충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반드시 그 안에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상상력의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목소리는 의미를 가진 소리이기 때문이다.(Hunt, 24)

그러나 이 생각은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의 생각보다는 한발 진전된 것이다.

데모크리투스는 "말은 행동의 그림자"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말과 행동을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 이후의 사고 연못에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과 소리의 파동이 전파되어나가는 것 사이의 비교는 고대에서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소리를 물결의 확산에 비유하여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스토아파 철학자인 크리시푸수(Chrysippus, ca. 280-207 B.C.)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후 1세기경에 활동한 서지학자인 디오제네스 레르티우스(Diogenes Laertius)가 인용하는 바에 의하면, 크리시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들음은 소리가 들리는 곳과 소리가 나는 곳 사이의 공기가 충격을 받아 공간적으로 흔들려서 귀에 도달할 때에 생긴다.

마치 저수지의 물이 그 안에 돌을 던졌을 때에 원을 그리며 흔들리는 것과 같다.(Hunt, 23) 기원전 1세기경의 로마의 건축가였던 마르쿠스 비트리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ivius Pollio)는 이 물결 비유를 더 확대시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를 보통 비트리비우스의 비유라고 말한다.

"목소리는 흐르는 숨결이며, 그것이 공기 중에 만드는 운동을 청각기관이 감지함으로서 느끼게 된다.

그 운동은, 마치 조용한 수면에 돌을 던졌을 때처럼, 무한한 수의 원형 영역으로 전파된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목소리 역시 원형의 운동을 발생시킨다.

분명한 것은 물에서는 원형이 표면에만 남아 있지만, 목소리에서는 수평으로 그리고 수직으로 전파되어 나간다.(Hunt, 24) 이와 같은 소리의 전파에 대한 여러 인용을 다 살펴보아도 그들이 소리를 전하는 매체에 가해지는 압력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세네카(Seneca ca. 5 B.C. A.D. 65)는 Natural Questions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혀의 타격으로 만들어진 공기의 긴장을 제외한다면, 소리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숨의 긴장이 없다면, 노래가 어떻게 불려질 수 있을 것인가? 혼이나 트럼펫 또는 오르간을 말해 보자. 이것들이 입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악기들이 그들의 기능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공기의 긴장을 만들기 때문이다.(Hunt, 24) 그후 소리에 대한 이해는 알파라비(Al-Farabi, ca. 870-950, Alpharabius로 기록하기도 함)에 이르러 진전을 보게 된다.

그는 당시 가장 뛰어난 과학자였고 무슬렘의 철학자이며 음악가였다. 소리 발생 과정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가 아리스토테레스 시대의 잘못 인식한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점으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알파라비는 "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두 물체의 충격에 의해 밀려진 공기다.

소리는 옆의 공기의 층에 자신과 똑같은 움직임을 만듦으로서 전달된다.

다시 이 움직임은 자신의 옆에 있는 공기의 층에 전달된다.

이렇게 계속된다.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소리는 공기의 한 층으로부터 다른 층으로 옮겨가, 마침내 청각의 통로 안에 있는 공기를 지나 청각 능력이 있는 기관에 도달한다"(Hunt, 24)고 말한다.

그러나 알파라비는 높은 음과 낮은 음의 구별에서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시대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 역시 음고의 높고 낮음은 공기 층의 입자들에 가해지는 압력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말해 음고가 그 압력 정도가 아니라 단위 시간당 가해지는 압력의 회수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갈릴레오에 이르러 소리에 대한 많은 사실이 규명된다. 같은 음고의 소리를 내는 두개의 줄 중 하나의 장력을 달리하거나, 줄의 굵기를 달리하면, 음 높이가 비례해서 변화하거나 또는 이들 양의 제곱근에 반비례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이 갈릴레오에 의해 지적되었다.

그후 보일(Boyle, 1627-91)은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없으면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실험을 완성하였고,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는 공명에 대해 연구하였다.

후크(Robert Hooke, 1635-1703)와 메르센느(Marin Mersenne, 1588-1648) 등에 의해 소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정리되었고, 그후 소리의 속도에 대한 이론과 실제 측정으로 그 일치를 증명함으로서 소리에 대한 오랜 숙제가 풀리게 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소리에 대한 남아 있던 의문은 보다 빠른 속도로 해결된다.

영(Thomas Young, 1773-1829)은 현의 진동에 대한 모든 이론을 정리하였고, 푸리에(Fourier, 1760-1830)는 현대의 파동 이론의 기초가 되는 수학적 공식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헬름홀츠(Hermann Helmholtz, 1821-1894)의 저서(Sensation of Tone)로 정리된다.

소리에 대한 올바른 물리적 이해는 19세기 이후에 이루어진다.

그 이전에는 소리의 뒤에 영적인 존재가 있다든지, 높은 소리는 낮은 소리보다 먼저 간다든지, 말은 곧 행동이라든지 하는 말에서 우리가 잠작할 수 있는 여러 편견이 소리의 이해를 지배하고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거부할 경우 20세기말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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