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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 악기의 녹음 [20] 원포인트 레코딩과 멀티레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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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이 새벽1시 삼분.

최근들어 이 시간에 잠을 청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실 12시반이 넘어서 잠시 잠을청하려다..슬슬 몸에 기운이 빠지며 잠이 들려하는데. 이 칼럼에 대한 내용이 며칠전부터 머릿속에 뱅뱅 떠오르고 있어서..

정리해서 글로 한번 남겨야 하는데.. 미루다...침대위에서 잠시 꽤 긴시간 고민을 하다.

곁에 있는 사람이 잠결에 깰까. 살금 살금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을 커버를 올립니다.


몇년전부터 제가 클래식 음악 레코딩에 완전히 빠지기 시작하면서 내용은 늘 클래식 녹음에 관한 이야기 일색.

드럼과 일렉기타나 베이스의 녹음과 여러가지 플러그인들과 아웃보드들을 사용한 믹싱 테크닉. 그리고 마스터링에 관한 독특하고 희한한 여러가지 방법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관심있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것이라 생각하는데

현재의 저의 관심사는 온통 어쿠스틱 악기의 녹음. 특히 클래식음악 녹음에만 신경이 집중이 되어있으므로 이에 관련된 내용들만 글로 남기게 되는것 같습니다.

언젠가 관심사가 마스터링으로 이동하게 되면 또 마스터링에 관한 여러가지 내용들을 많이 올리게 될런지도 모르지만요^^


이번에는 원포인트레코딩과 멀티레코딩

원포인트 레코딩이라고 하면 비단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여러 어쿠스틱 악기녹음에서 자주 사용이 되는 스테레오 레코딩 방식중 한가지만을 사용해서 녹음하는것입니다.

예를들어 AB 스페이스 페어만으로 오케스트라를 녹음한다던가

아니면 MS나 ORFT 만으로 체임버등을 녹음한다던가..하는것이지요.


현대의 대부분의 클래식음악 녹음은 기본적인 원포인트가 메인이 되고(오케스트라의 경우는 데카트리 방식이 아직도 많이 사용이 되는것 같습니다.

더불어 각 악기들의 그룹이나 포지션마다 스팟(엑센트 혹은 보조)마이크들이 많이 사용이 되는것이 일반적인 녹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막 클래식 녹음에 입문했을때는 왠지모르게 원포인트 레코딩! 하면 조금 멋있어 보이고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왠지모르게 원포인트 레코딩이 더 높은 수준의 녹음 방식이다! 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한동안 이방식을 고수해서 녹음을 한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심지어 클래식 뿐만 아니라 재즈나 포크음악의 녹음도 이렇게 진행을 해본적도 있었지요


이렇게 하다가 결국은 원포인트니..멀티 방식이니.. 이러한 방법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때론 원포인트가 어울리는 장소와 음악. 아티스트가 있고 또 멀티가 어울리는 경우가 있고

상황에 맞추어서 사용하는것이니

굳이 원포인트 레코딩이 멀티방식보다 더욱 더 높은 수준의 방식은 아니며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부분의 클래식 사운드는 오케스트라를 단 페어의 마이크(혹은 데카트리)만으로 녹음을 한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목관이나 팀파니. 더블베이스등의 파트에 스팟마이크를 사용해서 함께 녹음을 한 소리가 대부분 훨씬 더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동안은 원포인트 레코딩에 관한것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대부분 원포인트를 메인으로 거기에 여러 스팟마이크들을 사용해서 나중에 믹스를 하는 방법.

이 경우 대부분 메인 원포인트의 비중이 최종 믹스에서도 대부분 60-70%이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이렇게 최근까지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들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올해 최근들어 상당히 저의 관점을 바뀌게 되는 몇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요.

최근들어서는 대편성 클래식 음악의 녹음이 무척 많은 편이라 참 많은 녹음들을 진행하면서 늘 통의동 오디오가이 사무실의 스피커들에서는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있지요

아래의 합창녹음 칼럼에 대해서

음반은 2장짜리 앨범이고.

한장은 영자가 녹음.믹싱 마스터링을 하고

다른 한장은 다른 클래식레코딩 회사에서 작업을 한것이 한개의 음반에 실렸습니다.

굳이 경쟁을 떠나서 같은 합창녹음에 관해서 다른 회사들은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는가..가 무척 궁금해서 그 음반의 결과가 참으로 궁금했는데요.

앨범이 나오자 마자 들어보았습니다.

저도 그리 앨범의 음량을 마스터링시 올리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업한것보다 우선 작은 음량이더군요..

제가 작업한것은 소리가 분명하고 각 파트의 소리가 잘 들어나는 느낌.

그래서 언뜻 들으면 귀에 확 들어게 들리기는 합니다만.

다른 회사에서 한것은 영자가 작업한 공연시 무대 바로 앞 1층 중간보다 조금 앞쪽에서 듣는 소리라면

이 회사에서 작업한 소리는 2층 발코니 가운데에서 음원의 직접음과 반사음이 적절하게 혼합이 되고. 전체적인 앙상블이 조화롭게 들리는 소리.

사실 저도 처음 들었을때는 이렇게 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사무실의 쿼드 2805 정전형 스피커와 린 칸 소형 스피커에서도

집에서의 보체디비나 티노리 스피커와 탄노이 3LZ 오래된 스피커에서도 다시 면밀히 들어보니


가장 먼저 다른 회사에서 작업을 한 음반은 무엇보다도 "연주가 참 좋게 들리더군요"

제가 작업한것은 각각의 음질은 선명하고 뚜렷할런지는 몰라도 "연주의 단점이 그대로 많이 들어나는편"이었고요

두 합창단 모두 국내의 일류 합창단에 지휘자.

물론 녹음공간은 모두 달랐습니다만 제가 작업한 것은 마치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듯한소리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작업한것은 자연스러운 울림의 홀에서 녹음한듯한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나중에 깨닫고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좋은 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그토록 지금까지 칼럼등에서 이야기하던 "음악적인소리"

당장 귀에 듣기 좋은 음향적인 소리에 빠져. 이것만 생각하며 내가 녹음작업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시한번 뒤돌아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



에피소드 하나 더.

작년 연말부터 마산 315 아트센터에 가서 마산시향과 마산시립합창단의 레코딩을 무척 여러차례 함께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마산시향과 시립합창단의 지휘자분들하고도 서로 녹음을 하면서 음악적인 내용에 관해서 자세하게 의견을 나누며 .참으로 편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녹음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황녹음들 보다는 대부분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서 진행하는 세션레코딩이었기 때문에 보다 더 제가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던 여러 세팅들을 시도해볼 수 있었고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여러번 녹음들을 진행하면서 과거의 아쉬웠던 부분들을 수정해가며 좀더 좋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최근의 녹음은 음질적으로는 참 마음에 들게 녹음이 되었어요(아래 오케스트라와 합창녹음 칼럼 참조)


마산은 요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의욕이 대단히 큰곳으로

놀라운곳은 공연마다 큰 메인 공연장의 객석이 꽉찰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수준도 대단히 높아서 공연중 무엇보다도 곡이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여음에서도 기침소리 한번 들을 수  없이 쥐죽은듯이 조용합니다.

정말 놀라우리만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과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 생각이 드는데요


영자가 이곳에서 레코딩을 진행하기 전에

과거 녹음된 음원들의 리마스터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산시향에서 마스터CD를 받아서 다른 엔지니어가 작업한것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한번 들어보았습니다

물론 연주한 곡은 다르지만 음원들은 대부분 실황음원들이었지요.

딱 들었을때의 느낌은.

"아... 바로 이거야.. 이 자연스러운 느낌. 그리고 독일사운드 냄새가 나는 두터운 맛. 어딘가 과거의 유명 클래식 앨범들을 듣는 것과 같은 이 오케스트라의 음색"

무엇보다도 제가 녹음한 세션들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가 훨씬 더 좋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디오가이 레코드의 마스터링 엔지니어인 김현석씨가 리마스터링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저는 중간중간 들어보고 있었기 때문에

현석씨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자 : "아..이거 우리가 한것보다 제가 듣기에는 훨씬 더 좋은 것 같은데요? 연주도 더 좋고요"

현석 : 음.. 그런가요? 전 우리가 한것이 더 마음에 드는데요? 소리도 더 화려하고 거기에다가 저역도 더 풍부하고요.

영자 : 전 왠지 모르게 이 사운드가 과거 독일 클래식 사운드의 냄새가 나는것처럼 느껴져서 참 마음에 들어요

현석 : 아..그러한 부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녹음한것에 비해서 목관파트와 팀파니가 조금 빈약하게 들리고 저역이 가볍게 들리는것 같아요.. 질감을 좋은 것 같고요..

영자 : 전 그래도 이러한 사운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렇게 서로 짧게 이야기를 하고

이 음악을 레코딩한 엔지니어가 누구일까 참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마산에서 또 새롭게 녹음작업 연락이 와서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이때는 저는 가지않고 함께 일하는 김현석씨와 남송지씨 두분이 가서 다음날 녹음된것을 사무실에서 잠시 함꼐 들어보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번 제가 좋게 들었던 음원을 315 아트센터 음향감독님들이 녹음을 하신것이라고요.

마이크는 315 아트센터에 메인 ORTF로 달려있는 노이만 TLM170 과

바이올린 1ST와 첼로쪽에만 DPA 4011 스팟마이크.

이 4개의 마이크만 사용해서 녹음하고 현장에서 바로 2트랙 믹싱한 음원이었습니다.


물론 영자가 16개 혹은 24개 가까운 마이크들을 사용해서 녹음한것보다 초고역의 화려함이나
 
콘트라베이스와 첼로의 긁어대는 소리는 없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가 더 좋게 들립니다.

각 파트별 앙상블도 훨씬 더 좋게 들리고요.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단 4개의 마이크만으로 녹음한 음원.

최근에 오케스트라의 메인 마이크를 대부분 소구경 마이크만 사용을 해서 그런지 우선 메인 대구경 마이크에서오는 중저역의 두터운 느낌이 참 좋더군요

물론 초고역의 투명도는 조금 떨어집니다만..

무언가 소리는 투박한맛이 있지만 이것이 또 "멋"으로도 들린다고나 해야할까요?


이 이야기를 듣고 역시나 저는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요즘 무엇인가 잘못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수십대의 마이크를 정신없이 빠듯한 시간에 설치를 하고 또 치울때도 정말 헥헥..거려야 하지요^^

이 시간에 좀더 좋은 포지션에 메인 마이크를 세우는데에 더욱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메인과 더불어 각 파트마다의 스팟 마이크들을 설치하느라. 오히려 설치한 메인에서 아쉬운 부분이 생기는것을 스팟으로 자연스레 보정하게 되는것을 어느순간 그것을 제가 당연시 생각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요한것으 굳이 수십개의 스팟마이크를 설치하지 않더라도

메인마이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소리를 얻어낼 수 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이번 칼럼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이러한 여러가지 스팟마이크를 사용한것에 비해서 원포인트 레코딩이나 마이크를 최소화한것은

위상차이 그러한것은 우선 거의 제껴두고(사실상 마이크를 아주 잘못 설치하지 않는이상은 메인과 스팟에서 위상차이를 느낄때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솔리스트 마이크제외)

원포인트 레코딩. 그리고 마이크의 수가 적은 레코딩은

무엇보다도 음악이 훨씬 더 수준높게 들립니다.

각 파트마다에 여러 스팟마이크들을 함께 사용을 해서 믹스를 하면

중간중간 틀리는 파트들이 스피커 앞으로 조금씩 머리를 빼꼼 내밀고 삐죽삐죽 튀어나오는느낌. 이라고나 해야할까요?

하지만 원포인트가 중심인 녹음에서는 이러한것이 없이

"앙상블이 좋게 들립니다."


음향엔지니어를 하고 있다 보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로 녹음을 할 수 있을까?에 관한 생각들도 머리가 가득차게 되지요.

하지만 이와 더불어

어떻게 하면 지금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을 더욱 더 음악적이고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의 시간은 마이크세팅을 바꾸어 보는것에 비하면 오히려 참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

관련자료

Sungyoung님의 댓글

최근의 영자님의 글들을 읽으면

엔지니어로서의 성찰을 넘어서

녹음을 통한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녹음이 음악의 부수적인 산물이 아니라

녹음을 통해서 음악의 본질이 더 잘 살아나게 하는

그러한 심미안을 이제 곧 가지게 되시리라 믿어요.

그래서 영자님이 좋아하시는 사운드가 바로 음악적인 사운드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왠지 교회 부흥회 같은 분위기가 되었군요.. ^^)


저도 제가하는 심리음향에 관계된 일에서

최근까지 "개발자"의 입장으로만,

어떠한 새 기능이 필요한 것인가만을

신경쓰고 있는 제 모습을 새로 보았습니다.


다시한번 처음에 마음먹었던데로

Human Centric Audio를 위해서

달려나가고 있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최근의 기술동향이 아닌

몇백년전의 건축음향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결국 현재의 모든 음향기술을 다 합친다고 해도

컨서트헤보우의 음장을 재현하지는 못하니까요...

또 누군가의 말처럼

건축과 음악만이 사람을 "감싸는 - Surround" 예술이기 때문인것도 같습니다.





잠이 오지않은 밤에 저도 몇자 적어봤습니다.

하양님의 댓글

건축과 음악만이 사람을 '감싸는' 예술이기때문. 이라는 문구가 정말 인상 깊네요.
혹시 누구에게서 나온 말인지 알수 있을까요?
그 사람의 관련된 책이나 등등을 찾아보고 싶네요.
파고들어 하나하나 헤짚는 과정을 지나 숲을 바라볼수 있게 되는 그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Sungyoung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RESONANCE - Essays on the Intersection of Music and Architecture
라는 책에서 보았습니다.
그책에서도 아래의 내용을 인용했었습니다.

Paul Valery, "Eupalinos au l'architecte"
Music and Architecture differ from the other arts in their capacity to surround man entirely.

그럼..

누구게님의 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음악의 전달에서 "녹음을 통한 전달"의 철학적 기반에 대한 고민이 성숙해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뭔가 이상적인 것이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구체적인 답은 있을 것 같지 않은, 결과는 없고 그저 평생 추구만이 존재하는 그런 대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연주자들은 이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보는 경우가 적습니다. 기존의 연주회라는 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난" 사람은 다르다고,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과 추구를 했던 분들도 계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글렌 굴드겠죠. 녹음과 TV 연주 양쪽으로 남아 있는 글렌 굴드의 연주들을 들어 보면 음질이 좋은 상태이던 그렇지 못 하던 녹음을 통한 음악적 전달에 대한 연주자의 적극적인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결국 이런 질문이 되겠죠: 녹음을 재생할 때 "음원(스피커)"이란 무엇인가?

굴드는 아마도, 스피커가 녹음 시 음원(피아노)의 대체물이 되기를 어느 정도 기대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특정 공간에서 특정 위치에서 포착한 입체적인 음상의 재현이라는 접근은 전면적 의미를 갖지 못 합니다. "특정 공간에서 특정 위치에서 포착한 입체적인 음상의 재현"이라는 철학을 각별히 추구해 온 음반회사가 필립스가 아닌가 합니다. 많은 음반들에서 연주 홀의 공간음을 굉장히 중요시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게 음악적 전달이라는 면에서 좋을 때도 있고 좀 아닐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글렌 굴드의 입장에서도 배울 수 있듯이, 과연 녹음의 재생을 통한 음악적 전달이 연주회의 전통에 얽매여야 하는 것이냐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일반적인 연주회 형식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실연에서 좀 더 나은 음악적 전달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피아노의 예를 생각해 보면,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채울 수 있을 만한 홀을 피아노 한 대가 채우는 것 자체를 놀랍게 느낄 때도 있지만 거꾸로 현대의 피아노 자체가 그런 목적을 향해 진화해 왔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연주자 바로 옆에서 들었을 때의 피아노 음향과 큰 연주홀에서 떨어진 자리에서 들었을 때의 음향이 상당히 달리 들리는 것이 뉴욕 스타인웨이입니다. 반면에 큰 홀에서 함부르크 스타인웨이는 뉴욕 스타인웨이에 비해 프로젝션이 부족한 경향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만 음색의 변화가 좀 더 풍부하게 들리는 면을 보입니다. 과연 피아노 연주를 아주 큰 홀에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를 의심해 본다면 좀 더 작은 홀에서 가까이에서 듣는 편이 음악적 전달의 밀도가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데카 레이블의 박하우스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은 뵈젠도르퍼라는 특징 말고도 작은 홀에서의 연주 특성을 분명히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극단적 반대의 예로 박하우스의 연주보다는 훨씬 근래에 녹음된 안드레아 쉬프의 모짜르트 곡들이 있습니다. 한 번 언급했던 필립스 녹음이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안드레아 쉬프의 녹음은 "표현적" 측면의 전달이 사실 상당히 가려집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단순하게 표현의 전달이 부족하다고 볼 수 만은 없는 것이, 예술적 전달은 무조건 더 들이댈수록 더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네덜란드 특유의 홀의 음색에 대한 추구가 연주회의 일반성이 연주의 본질적 측면을 억제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녹음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접해 본 서양 고전음악 청중들 중의 상당수가 (어쩌면 다수가) 서양 고전음악을 들을 때 기대하는 음악적 경험을 "편안함", "휴식", "격조", 이런 단어들로 묘사했다는 사실은 서양 고전음악 시장의 성격이 가진 한계를 뜻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끔 온라인 포럼에서 제기하는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만, 아이튠즈의 소리 문제도 녹음을 재생할 때의 음악적 전달의 질에 대한 좋은 예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아이튠즈는 PCM 데이타를 ADC로 퍼나르는 대부분의 다른 재생 소프트웨어들과는 달리 저로서는 알 수 없는 무슨 처리인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튠즈의 설정에서 모든 음향처리를 다 꺼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비록 변수가 중립적으로 설정되어도 그 처리를 거치는 게 아닌가 추측할 뿐입니다. 결과는, 마치 질이 상당히 안 좋은 프리앰프나 무슨 EQ 같은 것을 중립으로 설정하고 물려 놓은 듯이 망가진 소리가 됩니다. 결과의 차이는 작다면 작을 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차이가 가져오는 음악적 전달의 차이는 너무 큽니다. 정상적인(?) 재생을 했을 때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리던 프레이즈가 아이튠즈로 재생했을 때는 너무나 답답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마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감상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어쩌면 음악을 녹음의 재생을 통해 감상하는 것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감상하는" 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만큼 아주 작은 차이도 음악적 전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물론 같은 곡이라도 연주에 따라서 전달되는 음악적 설득력의 차이에 비하면 이 차이는 훨씬 작을 지도 모릅니다. 단 한두 마디의 연주에서 이미 명연에서는 그 향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튠즈의 예에서 보듯이, 재생의 미묘한 차이에서도 그런 큰 차이가 나는데 녹음을 포함한 전체 과정이 음악적 전달의 정확성과 설득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방송 연주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있었던 뉴욕필의 신년음악회는 여전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영상 쪽 일을 하는 입장에서 영상도 기대와 거리가 멀었지만, 음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주도 별로였습니다...) 공중파 HD 방송을 비교적 좋은 재생 환경에서 본 경험에 대한 소견입니다. 그리고 요즘도 가끔 FM에서 한국가곡 녹음들을 들어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기대가 커서 그런 지 몰라도 연주도 아쉽지만 녹음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아직은 만족스럽다고 하기 어려운 한국의 서양 고전음악, 한국 고전음악 녹음이 발전할 수 있도록 운영자 님께서 애써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드신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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