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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20대의 나이로 살아온 저에게는 “삐삐”에 대한 아른한 추억이 있습니다. 아마 현재를 20대의 나이로 살아가는 오디오가이 식구들 가운데는 이 “삐삐”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삐삐,” 혹은 문자호출기는 일반전화기를 이용해서 입력한 숫자가 수신측에 보여지게 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현재의 텍스트메신저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였습니다.  수신만이 가능한 단방향통신이였으며 그것도 텍스트메시지보다는, 음성메시지를 녹음한 후, 그 음성메시지가 누구에게서 온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통신수단이었습니다. 그당시 대학생이였던 저는 쉬는시간마다 공중전화앞에서 그 “누군가”에게로 부터 온 메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길게 늘어서 있었던 기억, 그리고 그 가슴설레임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 “삐삐”는 핸드폰의 등장과 함께 급속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음성정보를 실시간으로 그것도 전화선이라는 제약이 없이 어디서나 공유할 수 있었기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삐삐”의 기능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긴 시간을 장황하게 삐삐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만, 사실 본론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점은 음성 혹은 사운드는 사람에게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정보를 통해서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보다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흔히 사람은 오감을 통해 주위의 사물과의 관계를 인지한다고 합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그리고 후각. 이중에서 촉각과 미각은 대상인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인식한다는 점이 다른 세가지의 감각과의 차이를 보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은 대상이 가지는 속성이 매체를 통해서 감각을 인지하는 기관에 전달됨으로서 그 속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5감을 통틀어서 객체이면서도 동시에 주체로 작용하는 감각기관은 청각뿐입니다. 사람의 여러 기관 가운데서 오직 청각기관만이 동일한 기능을 위한 수신부 – 귀와 고막을 통한 음파의 인식 –와 송신부 – 성대를 통한 음파의 형성 –를 별도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사람은 음파를 인식할 수도 그리고 생성해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기능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바로 어떠한 형태의 정보이건, 획득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입니다.  비록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오면서 “문자”라는 시각정보를 기록하는 방법을 발명해내었지만 인류의 문명사를 돌아볼때 문자를 발명하여 사용하는 것은 전체 인류의 역사에 비해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저자들도 문자를 통해서 저희들의 정보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보교류는 “양방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음성정보와 차이를 보입니다. 저희들은 긴 텍스트메시지를 써서 전달할 뿐이지, 이 메시지에 독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가 되는 것이죠.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메시지 혹은 이메일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지만 그것이 참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듯 음파를 통한 음성 및 사운드의 정보는 그 기본 기능이 정보의 “교류”에 있습니다. 동시에 음성정보는 시각적 혹은 촉각적 정보가 가지는 한계를 보충하는 역활을 합니다. 시각적정보는 정확한 반면 그 인식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촉각적 정보는 직접 대상과의 접촉이 없이는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각을 통한 정보는 간접적인 대상인식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 뒤로 부터 차가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청각 정보가 아니면 인식할 수 없습니다. 비록 주체인 사람이 인식하고 있던 인식하지 않고 있던 청각기관은 주체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을 음파로 변환하여 그 변환된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의 면에서 본다면 시각적인 정보가 받아들이는 양은 청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에 비해 아주 미세한 양입니다. 

청각정보가 전체적인 대상을 인식하는 데에 어느정도 기여하는지를 알기위해 몇몇의 심리학자들이 테스트를 했었는데요,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시청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첫번째 그룹은 화상정보를 규칙적으로 끊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그룹은 음성정보를 규칙적으로 끊어지게 했습니다. 이 두 그룹에게 전체적인 불쾌감 – annoyance를 표시하도록 했는데요. 화상이 끊어진 그룹에 비해서 음성이 끊어진 그룹이 프로그램을 감상하는데 있어서의 방해를 받을 만큼의 불쾌감을 느낀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각해보면 화상없이 진행하는 라디오라는 매체는 있어도 음성정보없이 진행하는 방송은 거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음성정보가 전체적인 정보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점이 기본적으로 청각기관을 정보를 청취하는 쪽으로만 편향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20kHz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러한 고주파영역에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유의미한” 정보가 없다는 사실로 인해 점점 그 부분을 인식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 처럼, 청각정보는 정보가 유의미하게 전달되기만 하면 그 목적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 완성의 기준또한 각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시작적인 정보는 “빨간”색을 보면 모든 사람이 빨간 색이라고 말합니다. 즉 의미와 관계없이 대상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거나 사회적으로 교육되어지는 것이죠. 멀리서있는 건축물을 보았을 때 대부분은 그 건축물이 무슨 색깔이며 무엇으로 만들어졌다고 가늠하고 (목재인지, 석재인지), 그리고 크기라든지 형태등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 건물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주는지는 개인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죠. 음성정보는 그와는 전혀 반대의 양상을 지닙니다. 음성정보가 전달되었을때 청취자는 그 정보의 음색이 밝은지 아닌지, 그 정보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보다는 정보 자체가 어떤 내용인지를 관심을 가집니다. 또 하나의 예로 우리가 식당의 메뉴판을 보고 색깔의 배열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을 어느 누구도 재능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흐르는 음악을 듣고 그 안의 음을 바로 구분하여 D6 F4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절대음감”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으로 여깁니다. (돌아보니까 베토벤바이러스에서도 마에스트로가 젊은 강마에에게 질투를 느끼는 장면도 마구 눌러진 피아노 건반을 분석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것을 발견하던 순간이였군요… ^^) 그만큼 듣는 것을 통해서 세분화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 아닌 후천적으로 트레이닝되어진 능력이라는 것을 사회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트레이닝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99% 음악가였습니다. 연주자 혹은 작곡자들은 한편으로 소리가 가지는 정보교류의 차원을 극대화시켜 그 안에서 의미있는 organizing을 끊임없이 시도해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정보교류를 넘어서는 차원에서의 소리의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서 동시에 노력했습니다. 바로 Quality의 기준을 만족하는 소리를 찾기시작한 것이지죠. 동일한 정보이지만 보다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내고, 동일한 공연이지만 보다 좋은 소리를 전달하는 공연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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