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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의 피아노 즉흥연주에 관하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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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밤에 찬 물로 씻기가 조금 불편하더군요, 모두 건강 유의하세요.


며칠 전에 오래 전 음반을 듣다가, 당시에 품었던 의문(?)을 떠올렸습니다.

그 당시는 그 의문을 풀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떠올리다가 가라앉혔지만, 요즘이라면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어, 이 곳에서 여쭤봅니다.


키스의 비엔나 콘서트를 들었는데, 연주시간이 3~40분 이상되는 솔로 즉흥곡에서, 과연 연주자는 곡의 구성을 어느 정도 잡고 들어갈까요?

상황이나 연주자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즉흥곡이라고 하기에는 구성이 매우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걸 리허설을 거친 거라고는 할 수 없겠고....

평상시의 연습이나, 오로지 그날의 삘~~,  영화 '모 베터 블루스' 를 보면 셰도우(웨슬리 스나입스)가 솔로 파트를 너무 길게 한다며 동료들에게 핀잔을 듣는데(뭐~ 영화 내에서의 연주는 사실 멋졌습니다만), 뭐 맘만 먹으면 길게 갈 수는 있겠지만~~

키스가 피로한 그 연주는, 오로지 '즉흥'이라는 말로 대변될 그 즉흥곡이라고 하기에는, 그 짜임새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이걸 순전히 즉흥 연주로 펼쳐낸 것인지~~

연주 전에, 최소한 얼마만큼 연주하겠다, 혹은 대략 이러이러한 구성으로 가겠다~~ 라는 식의 계획을 잡고 시작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시계를 보면서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평소 훈련이 되어 있다고는 해도, 몰입도나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다고는 해도 가끔씩 헤메거나 나르시즘에 빠져 형편없는 연주임에도 본인은 그걸 깨닿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물론 그것이 실력을 반증하는 잣대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중간 중간에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곧바로 다음을 향해 몰입해 가는 곡을 듣다 보면 '과연 저것을 어떻게 즉흥 연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광수 선생은 장편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탈고할 때까지 수정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도 있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혹은 그의 천재성을 강조하기 위한 소리 정도로 생각합니다)

1~20분 정도가 아닌 40여분에 달하는 연주를 의미합니다.

이 곳의, 현장에서 뛰는 분들이라면 이런 부분에 관해 전해 듣거나 직접 경험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한 번 여쭤봅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 정리가 되어 있는 기타 문헌이나 사이트 등에 대한 안내를 해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관련자료

Corpse Grinder님의 댓글

저는 예전에 밴드를 잠시 쉬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탈북자 관련 단체의 일일호프에서 만난 연주자들 때문에 그들과 같이 밴드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냥 서로 다른 초대가수일뿐이었는데... 닐영의 "Down by the River"를 어쩌다 같이 연주하게 되면서..
한 40~50여분을 잼을 했던거 같아요. 아마도 그날의 연주가 제 인생 최고의 연주였던거 같습니다.

정말 아무 구성이나 계획없이 그냥 시작해서... 솔로 주고 받으며 어쿠스틱 기타로 그렇게 즐겁게 연주한 적도 없었고
그날 무대서 내려와서 얘길 나누어보니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이 되게 비슷하더군요. 

그냥 그랬던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10년전이네요.

Me First님의 댓글

두분 모두 말씀 감사합니다.

물론 그게 즉흥연주죠.  ^^;

그런데 여기서 제가 질문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디테일 한 부분입니다.

즉흥 연주임에도, 자유로운 흐름임에도 불고하고 연마해 낸 듯한 연주와 구성의 치밀함이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

평상시의 구상?, 꾸준한 연습을 통해 몸에 베어 있는?, 그런 연주를 실현해 내기 위한 철학이나 가치관, 그리고 그것을 끌어 낼 수 있는 고찰이나 명상 등?, 그리고 평소 어떤 연주를 피로하겠다는 청사진을 담고 있는 것인지....

최소한 연주 회장에서 악기를 다루기 직전까지 아무 생각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뭐~ 예외적으로 일부로 머리를 비우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초적인 청사진을 그려 놓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몸에 베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뭐, 그런 점들에 대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런 점들은 연주자가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을 텐데, 그런 것을 현장에 계신 분들이라면 좀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하여 여쭤보았습니다, 혹은 그런 것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문헌이나 사이트 등의 자료 . . .

뭉뚱그려서, 그저 연주자의 역량이라고 하면 너무 간결하고......

아무래도 까다롭고 수비범위가 너무 넓은 질문을 하고 만 것 같습니다.  ^^;


그건 그렇고, 함부로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Corpse Grinder님은 정말 좋은 경험을 갖고 계시네요, 개인적으로 꼭 체험해보고 싶은 부러운 경험입니다.

운영자님의 댓글

이번 9월에 발매되는 오디오가이 레이블의 신보 앨범중에 하나가

정재일(피아노. 기타)

김책(드럼) 의 듀오앨범이랍니다.

두사람이 만나서 즉흥으로 연주를 한것을 담아 앨범으로 만들었어요.

언제 통의동 지나시는길 있으시면 저희 스튜디오에서 한번 들려드리고 싶네요^^

heone님의 댓글

결국 즉흥연주이지만 그 정교함과 치밀한 음악적 구성이 아무 구상없이 무대 위에서 시작해낸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그런 구상을 어느 정도까지 하고 시작하는 것일지 궁금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사실, 키스 재릿이 그런 장시간의 즉흥 연주를 하면서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영감을 얻어서 얼만큼 곡의 구조를 미리 구상해놓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얼마만큼 구상을 하고 있든 간에 그것이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 또는 피아노에 앉는 순간, 또는 첫 음을 누른 시점에서 이전의 구상을 다 바꾸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는 곡을 이끌어가다가도 많은 부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결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상을 얼마만큼 했든 안했든, 그가 이끌어내는 완성도 높은 연주는 그런 구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시간의 즉흥연주를 그렇게 완성도 있게 끌어내는 것은 - 구상이 잘 되어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 그가 가진 깊은 음악적 이해, 피아노 독주와 자신의 연주 스타일에 대한 명확한 주관, 풍부한 영감과 감수성, 지치지 않는 감성적 에너지, 그 모든 걸 유창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vocabulary, 그리고 열정을 통한 것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의 연주가 정교하고 미려한 스타일이고 워낙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마치 미리 많은 부분을 준비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 그건 그의 재능이자 연륜인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좋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면서도 주춤하는 기색조차 없는 장시간의 '즉흥' 연주가 그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죠. '잘 훈련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 높은 곳에 올라서 있는 피아니스트이니까요. 테크니컬한 부분은 그저 표현의 도구로 - 논외로 두어도 될 만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너무 많이 담고 있는 연주입니다.

각설하고, 구상을 어디까지 했을까가 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얼만큼 구상을 했든 연주하는 동안 이끌어가야 하는 부분은 훨씬 더 많고, 그 안에서 감으로 해결하는 게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교함과 짜여진 듯한 구성, 그게 키스의 능력이고 그의 음악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대가 아니겠습니까.

Me First님의 댓글

네, 연주자 본인에게 물어보더라도 인터뷰어가 능숙하게 이끌어내지 않으면 듣기 어려운 질문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heone님께서 정말 좋은 코멘트를 남겨주셨네요.
물론, 비록 (결과적으로)구성이 치밀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음악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한정할 수는 없으며 위에 저의 어눌한 글 역시 말씀하신 모든 면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만, 연주자의 역량이라고 뭉뚱그리면 너무 간결하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쓴 것인데, 그에 대해 무척 명료한 글로 대변해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평소 heone님의 음악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좋은 글이어서 읽는 이의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

특히 ‘얼마만큼 구상을 하고 있든 간에 그것이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 또는 피아노에 앉는 순간, 또는 첫 음을 누른 시점에서 이전의 구상을 다 바꾸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와 ‘자신의 연주 스타일에 대한 명확한 주관’, ‘그 모든 걸 유창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vocabulary’ 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하며 근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주자의 여러 능력과 그런 요소들의 복잡한 어우러짐이 결과를 낳겠지만 이번에 구성 쪽에 눈길이 끌린 것은 사실입니다. 뭐, 사연이 있긴 합니다만,,,간략히 말하면, 정상에 올라가 내려다보았더니 평원 위에 그려져 있는 거대한 그림이 너무나 정갈했다고나 할까요, 잘 그렸다거나 못 그렸다거나 하는 것을 떠나서 말이죠.

그래서 그런 연주(무척 긴 즉흥 독주이지만 뛰어난)와 관련된 연주자들의 심정이나 평소의 생각(혹은 자세?)같은, 그런 것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아무래도 저는 그게 궁긍합니다). 그런데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라면 직접 전해 듣거나 잘 헤아리고 있을 것 같아서 . . . . 그런 것에 대해 듣거나 문헌&사이트 등을 알아보려던 것인데, , , , 일단은 직접 찾아봐야겠습니다.(이거, 괜히 민폐를 끼친 것 같은~~~~) ^^;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하양님의 댓글

인상깊은 글에 한참을 생각합니다.

작품자의 머릿속에 어떤것이 있든, 또 그 어떤것을 있게끔 하기위해 어떤 경험과 자세를 가지던
그것을 밖으로 표현기위해 사용되는 방법들중에 '음악' 이 선택된것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좀더 대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을 쓰기위해 많은 수정을 하고 또, 그러한 과정을 통해 수 많은 작품들이 쌓인 작가에게서 나온  '즉흥적인 긴 시간동안의 짜임세 있는 말' 이란 그간의 그의 지난 삶을 통해 알수 있다고 보며 이처럼 음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라면 dvd에 대부분 포함된 제작기나 감독인터뷰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수 있지만
음악은 그런면에서 조금 접근이 쉽지 않다는게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precious  하게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악인들중에 그들의 철학이나 감성등을 말이나 글로서  그들의 음악보다 더 잘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은 참 드물꺼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hazz님의 댓글

음...
J.S bach 라는 괴물에 대해서 공부하다보면 말이죠, 이 괴물께서는 복잡한 대위법의 곡들중 어지간한건 거의 즉흥연주
수준, 혹은 실시간 사보하듯이 마구 써내려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아마 웬만한 2성 혹은 3성 푸가는 즉흥연주로도 가능 했다는 얘기죠.
바로크 시대 잘나가는 음악가들은 음표 하나 하나에 고민할 틈이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무도회며 크고 작은 각종 행사와 매주 준비하고 연습해야할 예배음악-특별한 주간이라도 걸리면 대작이 나오게 되죠^^
요즘 작곡가들의 실력으로는, 당시 수준의 예배음악 한번 준비하는것만도 일주일로는 어림도 없겠지요.
그래서 연주자들의 실력이 가장 뛰어난것도 바로크 시절이란 말이 있습니다.
뭐 몇달 몇년 준비해서 녹음이나 공연 한번 하는게 아니라 거의 매일 무대에 서야 하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연습량도 많았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분량의 음악회에서 매번 100% 신곡만 올렸을까요?
기존의 곡들도 재탕하겠지만, 어지간한 수준의 연주는 미리 약속하고 즉흥연주도 충분히 가능했을겁니다.
결론은,
평소 공부와 연습에 의해 경이로운 구성의 즉흥연주가 가능하다입니다.
앞서 말한 괴물의 작품 세계를 휘졌다보면, 사실 키스자렛의 즉흥연주 정도는, 그 구성에 있어서 비교 조차
민망합니다.(저두 키스자렛 광팬입니다만,,,,)
참, 그런데 그 괴물이 즉흥연주 하는걸 봤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습니다....

켄신님의 댓글

슈만과 브람스의 일화가 있죠...

슈만이 한 살롱 (울나라의 살롱과는 전혀 다릅니다) 에서 즉흥곡을 연주했죠... 그리고 내려와선
'이곡은 넘 어려워서 다시는 이렇게 연주 못 할거야..' 했습니다.

근데 나이어린 브람스가 앞에 나와서 '선생님, 제가 한번 연주해 보겠습니다' 하고는
피아노에 앉아서 슈만이 연주했던 것을 그대로 연주했답니다. 완전히 그대로...그 살롱안에서 모두 처음 들은것을요..

클래식계에서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슈만의 즉흥곡은 현재 악보로도 출판되어 있습니다. ㅎ

heone님의 댓글

바로크든 고전이든 낭만이든, 우리가 아는 저명한 클래식 작곡가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천부적인 재질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연주자들이기도 했고, 음감과 음을 분석하고 구현해내는 능력 등은 천재적인 사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완성도 높은 곡들을 매우 쉽게 만들어낸 것 같은 인상이 강하게 남는 걸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하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즉흥 연주와, 키스가 했던 현대 재즈의 즉흥 연주는 완전히 다른 예술 형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시대의 흐름으로 생겨난 화성의 발달과 장르의 차이가 아닌, 추구하는 것이 다른 연주 - 바하가 당시에 즉흥 연주를 했다면 - 일 거라는 얘깁니다.

바하의 비범한 재능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현대의 재즈 즉흥 연주는 굉장히 open되어있고 훨씬 포괄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어서, 바하의 음에 대한 능력과 같은 '두뇌'적인 역량의 부분은 그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을 연주에 담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로크 시대에 즉흥연주라 하면 쓸 수 있는 화성이나 프레이즈 등 음을 운용하는 관점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제약이 많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규칙들을 충족시키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음악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사실 자체가 그 음악의 중요한 컨셉이 되었을 겁니다. 추구하는 것 또한 당시의 음악이 가지는 기준에 따른 정교함, 완전무결함일 것이라 생각되고요. 지금의 즉흥 연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면에서 단순히 비교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구성에 대한 것 역시 그렇습니다. 바하가 매일매일 연마된 솜씨로 즉흥 연주를 완벽한 구성으로 해냈을 수도 있겠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지금의 즉흥 연주에 그것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얘기하는 장시간의 즉흥 연주에서의 구성력이란 것은 - 그 연주가 포괄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 몸에 밴 것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가 됩니다. 바하의 다른 곡과 키스의 즉흥 연주의 구성을 비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바하의 곡은 그러한 면에서의 완결성을 굉장히 중요시한 음악이고, 키스의 즉흥 연주는 그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로, 관점이 좀 달라야 하는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켄신님이 말씀해주신 일화 역시, 물론 브람스의 천재적인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지만 사실 지금 얘기하는 즉흥 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그리 큰 이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뛰어난 화가가 위대한 고전 작품을 정말 똑같이 그려냈다고 해도, 'So what?'일 뿐입니다. 물론 그 사람은 대단히 훌륭한 테크니션이겠지만, 자신이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없다면 거기까지일 뿐이니까요. 아주 단순한 것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맨 땅에 만들어내는 것은 카피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만약 키스의 연주를 누군가가 듣자마자 똑같이 쳐냈다고 해도 - 그 능력에 감탄은 하겠지만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음악은 스포츠가 아닌데 말이죠. (물론 브람스의 경우야 작곡가로서도 훌륭하니 다른 경우라 하겠습니다)

때론 바하나 모짜르트 같은 사람이 현대에 태어났으면 어떤 곡을 쓰고 어떤 연주를 보여줬을지 참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천재적인 역량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지금 시대의 음악을 만났더라면 어떤 것이 탄생했을지 궁금한 거지요. 하지만 키스 재릿의 연주가 그러한 천재성에 뒤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완성도 있는 걸 만들어내는 건,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때 더 어려운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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