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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CD의 크기와 용량을 카라얀이 결정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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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Compact Disc (CD)의 지름은 12cm이며 이는 약 74분 길이의 음악을 담을 수 있고, 약 680 메가바이트 (표준모드 1의 경우)의 데이타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는 700 메가바이트, 80분 길이의 CD가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말이다.

 

CD의 용량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결정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사실인 것처럼 ‘알려진 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70년대 말 공동으로 CD를 개발 중이던 필립스와 소니는 CD에 담을 수 있는 녹음재생 시간을 결정하기 위해 저명한 지휘자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에게 자문을 구했다.

 

둘째, 카라얀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도록 74분을 제안했고, 이것이 CD용량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네이버의 지식Q&A, 오픈사전은 물론이고 다른 포털사이트에서도 정설로 굳어져 있다. 몇몇 신문에도 이런 이야기가 소개된 듯 하다.

 

과연 이 이야기는 얼마만큼 사실일까?

 

온라인 백과사전인 Wikipedia의 카라얀 편에 보면 (http://en.wikipedia.org/wiki/Herbert_von_Karajan)  “Karajan and the compact disc” 라는 항목이 있다. 카라얀과 CD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알려진 내용보다 조금 더 자세하다.

 

1979년 필립스가 개발한 CD플레이어 시제품을 시연하는 기자회견장에 카라얀이 참석했고, 당시 60분 분량이었던 CD의 용량에 대해 카라얀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담을 수 있도록 74분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글의 말미에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다른 온라인 백과사전인 AllExpert.com의 베토벤 9번 교향곡 편에 보면 (http://experts.about.com/e/s/sy/Symphony_No._9_(Beethoven).htm) “Ninth Symphony in the 20th century” 항목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간단하게나마 언급되어 있다.

 

필립스-소니의 CD 재생시간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한 장에 들어갈 수 있는 분량으로 결정되었는데, 소니 회장이었던 모리타 아키오와 친분이 있던 카라얀과, 모리타의 부인, 그리고 후에 소니의 회장이 된 오가 노리오의 영향이 컸다고 적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나, 이 글 또한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덧붙이고 있다.

 

현대의 루머가 사실인지를 검증하는 글을 소개하는 사이트인 Snopes.com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검증하는 루머는 “필립스-소니가 개발한 CD의 최대 녹음재생 시간을 74분으로 한 것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담기 위해서” 이다. (http://www.snopes.com/music/media/cdlength.htm)

 

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기준이 되었는가에 대해 이 글이 소개하는 ‘설’은 여러 가지이다.

 

1. 소니의 사장이던 오가 노리오가 제일 좋아하던 음악이다.

2. 소니의 회장이던 모리타 아키오의 부인이 제일 좋아하던 음악이다.

3. 카라얀이 1981년 비엔나에서 열린 시연회 (Wikipedia의 내용과는 조금 다름)에 참석하여 이를 ‘요구’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사실판단 여부 결정보류’이다. 오가 노리오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언급한 것은 확실하지만, 11.5cm였던 필립스의 원안을 12cm로 변경하는데 확실한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이다.

 

위의 글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CD의 용량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은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Wikipedia, AllExpert.com 이나 Snopes.com은 일종의 오픈 백과사전이므로 한편으론 공신력이 떨어진다.

 

그럼 공신력이 있는 자료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첫번째 자료는 1998년 Journal of Audio Engineering Society (vol.46 no.5)에 발표된 Kees A. Schouhamer Immink가 쓴 “The Compact Disc Story”라는 논문을 들 수 있다. 1997년 9월에 있었던 이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으로써, 학술논문이라기 보다는 CD의 탄생과 기본적인 기술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글이다. 저자는 필립스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CD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이 글을 보면 CD의 파라미터의 결정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77년, 78년에 필립스와 소니는 각각 개발 중이던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 시연회를 개최했고, 기술의 상품화를 위해 두 회사는 79년에 손을 잡기로 결정한다. 79년 8월을 시작으로 두 회사 연구팀이 서로 기술을 교환하고 기술의 표준화를 위한 논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 5월이 되도록 두 회사 연구진은 여전히 논의만 거듭하고 있었다. 이때 현 (1998년 당시) 소니 회장인 오가 노리오가 전화를 해서 일주일 내로 두 연구진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영진에서 결정을 하겠다고 통보한다. 그래서 각종 파라미터에 관한 합의를 빠르게 진전시켰다.

 

여기서 CD 지름의 결정에 관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 결정 (CD 지름의 결정)은 필립스 고위층에 의해 내려졌다. “카셋트가 엄청난 성공을 한만큼, CD의 크기도 카셋트 테잎보다 너무 커서는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0.5cm를 늘려 12cm로 결정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길이가 CD 용량에 영향을 미쳤다는 많은 이야기는 다 헛소문이다)”

 



 



 

이 논문은 기존의 ‘알려진 이야기’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You should not believe them (stories)”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필립스 측의 CD 기술은 원래 14 bit의 11.5cm 였다. 그런데 왜 CD의 지름을 0.5cm를 늘려 12cm를 표준으로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은 다른 자료에서 찾아볼 수 밖에 없겠다.

 

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는 필립스 웹사이트이다. 이 웹사이트의 연구 관계서류 항목에 보면 (http://www.research.philips.com/newscenter/dossier/optrec/index.html) CD 개발에 관련된 자세한 뒷얘기가 소개되어 있다. “Beethoven's Ninth Symphony of greater importance than technology” 라는 소제목에 소개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립스 연구진은 지름 11.5cm, 양면 LP보다 약간 재생시간이 긴 한 시간 분량이면 CD의 크기로 적당하다고 제안하였으나, 당시 이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고 있던 소니의 부사장 오가 노리오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오가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아주 좋아했는데, 이 곡이 한 장의 CD에 담겨질 수 있는 용량이 적당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길이를 조사해본 결과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한 것이 66분으로, 이는 필립스의 표준안으로 커버할 수 있는 용량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필립스의 자회사인 폴리그램에서 보다 자세한 조사를 했더니, 1951년 지휘자 Wilhelm Furtwängler가 녹음한 9번 교향곡이 가장 긴 74분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이 시간이 CD의 재생시간으로 결정되었고, 이 재생시간이 가능하도록 CD의 지름은 12cm로 결정되었다.

 

두 자료는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Immink 논문은 CD의 재생시간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고, 필립스의 웹사이트는 분명이 관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두 자료를 통해 몇 가지 추론을 해보면

 

첫째, 필립스와 소니는 서로 손을 잡기 전에 이미 상당 부분 연구를 진행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기술표준에 관한 이견이 많았고, 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연구진과 경영진 사이에도 어느 정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적어도 CD의 재생시간, 혹은 크기에 대한 결정은 연구진의 기술적인 판단보다는 소위 ‘윗 선’의 판단을 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74분 재생시간에 대한 필립스 웹사이트의 자세한 설명으로 보아 오가 노리오의 제안 (베토벤 9번 교향곡)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필립스나 소니가 카라얀에게 자문을 구했다거나 혹은 카라얀이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는 모두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CD의 재생시간으로 제안한 오가 노리오는 원래 베를린에 있는 예술학교에서 공부한 오페라 가수였다. 소니의 녹음기의 질에 대해 비판한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소니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1994년에서 2000까지는 소니의 회장을 지냈다.

 

또한 카라얀과 프르트 뱅글러가 지휘하고 녹음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길이가 다르듯이 지휘자에 따라 녹음시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Claudio Abbado가 2000년에 녹음한 CD는 62 분 19 초이고 Leonard Bernstein이 1990년에 녹음한 CD는 71분 2초이다. 카라얀이 지휘로 녹음한 LP나 CD를 보면 62년 녹음한 것은 67분 1초, 76년 녹음한 것은 66분 54초, 83년 녹음한 것은 66분 14초 이다. 실제 연주 앞뒤로 삽입된 공백이나 박수소리를 감안해도 같은 카라얀 지휘의 CD라 할지라도 녹음 시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카라얀이 지휘하여 녹음한 베토벤 9번 교향곡의 길이가 CD 재생시간으로 결정된 74분과는 큰 거리가 있음도 알 수 있다.

관련자료

jaco님의 댓글

제가 알고 있는 "카라얀"에 대한 일설 몇가지 (믿거나 말거나??)

가끔 소프라노 조수미를 광고할때 카라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 말했다고들 얘기하죠
tv 다큐멘타리에서 확인할수있는데  "목소리가 타구났군~!" 이 정설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무대도 아닌 사무실에서 간단한 스케일링 만 듣고 한 말이라는 --;)...

2차대전때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나치당에 가입하고 히틀러를 위해 연주를 했다는 사유로
독일에서는 전후 수년간 활동금지 징계를 당하고 있을시 레코딩 콘덕터 알선 및 복권후원을
한 이가 위에 언급한 sony 회장이라 더군요, 그 후로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여 "도이치 그라마폰"
만큼이나 sony사에서도 카라얀 연주의 cd를 많이 발매하고 있죠...

그는 자신의 연주뿐 아니라 어떠한 클래식 음반도 개인소장하여 듣는 일이 없었답니다.
오히려 70이 가까운 나이에도 경비행기 운전과 ski가 취미였다는...가끔 음악을 들어도
jazz 음악을 즐겼다는 군요~  ( 사실 확률 75% +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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