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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맥스 로치'와 '섹소폰 콜로서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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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로치가 8월 16일 83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던 재즈의 황금기를 보낸 뮤지션들, 한 분 두분 가시기 시작했는데 이젠 몇 분 안 남았겠군요.

 맥스 로치를 생각하면, 본인에겐 미안하지만, 섹소폰 콜로서스의 세인트 토마스에서의 그 드럼 연주가 떠 오릅니다....(뭐, 아는게 이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 . . . )

 본 앨번에 관해 몇 해 전에 읽었던 내용을 소개합니다, 맥스 로치 본인의 의견도 있어, 그의 죽음이 왠지 가상의 일같이 느껴집니다.

 


[[ 재즈 초명반 연구  2. ]]

수 많은 재즈의 명반 중에서도 다른 것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갖고 있는 작품이 있다.
말하자면 `초명반 ( 超名盤 )` 이다.
영원한 베스트 셀러로서의 `초명반`을 주역으로 하여, 앨범의 탄생에서부터 에피소드, 트리뷰트, 그리고 관련된 필청 음반까지 조명해 본다. 제2회는 테너 섹소폰의 거인 Sonny Rollins가 25세에 창조한 모던 재즈의 교과서 [ Saxophone Colossus ] 로,  권두에서는 우선 소니 로린스 자신에 게서 듣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Interviewer : 兒山紀芳  ( 이하 Int )
 Sonny Rollins ( 이하 SR )


 [ Special Interview ]
Sonny  Rollins 가 말하는 [ Saxophone  Colossus ] 의 진실

Int : 우선 앨범의 커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Saxpohone  Colossus ] 의 사진 (이 커버 사진에 대한 Credit 등, 정보는 없음.)은 누가 촬영한 것입니까?  이 실루엣은 당신이 틀림없겠지요?!

 
SR : 그래요, 확실히 제 사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촬영한 것인지는 기억에 없군요. 아마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별히 [ Saxophone  Colossus ] 를 위한 촬영에 관해서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레코딩이 진행될 당시, 누군가가 찍은 사진이 되겠지요. 

Photo 에 관한 Credit 이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어쩌면  PRESTIGE 의 오너이자 Supervisor인  밥 웨인스톡 ( Bob Weinstock )이 촬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스튜디오에서 자주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 역자 : 기사의 뒷 부분은 보면, 엘범 정보에서 이 사진의 촬영자가 나옵니다.  물론 CD의 인쇄물에도 명시되어 있는데, 인터뷰어가 실수했던 걸까요?  이 정도 사진이라면 28 m 이하의 렌즈로  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레코딩 중이었다면 이렇게 붙어서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Int : 커버에 등장하는 사진에는 안경이 보입니다만, 이 무렵부터 안경을 쓰셨는지요?

 
SR : 선글라스라던가 안경은 예전부터 썼었습니다.

 
Int : [ Saxophone  Colossus ] 의 레코딩 멤버는 피아노의  토미 플레니건 ( Tommy Flanagan ) ,베이스의 덕 왓킨슨 ( Doug Watkins ),드럼의 멕스 로치 ( Max Roach ) 였는데, 이 멤버는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요?

 
SR : 대개의 연주에서는 내가 선택하곤 했기 때문에 이 때에도 분명 그렇게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밥 웨인스톡이 선택한 멤버를 수락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어느 쪽이 됬던, 이 멤버는 전부터 함께 해 왔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Worktime ] 을 녹음할 때에도 이 멤버였죠.  내가 밥에게 이 멤버와 같이 연주할 것을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흔쾌히 수락했을 것입니다.



Int : 이 세션에서 공연한 뮤지션에 관해서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SR : 베이스의 덕 왓킨슨이 먼저 생각나는군요.  그는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떴습니다. 훌륭한 뮤지션이었지요. 그를 어느 정도 클래스의 베이시스트로 인지해야 좋을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자동차 사고였죠.

덕은 아트 브레이키 ( Art Blakey )의 재즈 메신져스 ( The Jazz Messengers ) 를 시작으로 여러 뮤지션과 공연해 왔습니다. 항상 밝았으며 인격 또한 훌륭했죠. 베이스 연주자로서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면을 가장 잘 증명해 준 것이 이 앨범에서의 연주였습니다.



Int : 클리포드 브라운 ( Clifford Brown ) 이  이 앨범의 세션이 있은 뒤 4일 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되었지요.

 
 SR : 그 무렵의 뮤지션들은 아무리 먼 곳에 가더라도 자동차를 이용했었습니다.  빅 밴드라면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소편성 콤보의 경우라면 일반적인 승용차를 이용했던 것이지요.제가 처음으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갈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 때. 멕스 로취의 퀸텟으로,  한 대의 차에 5명이 타고,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중간 중간의 도시에서 연주를 하면서 이동했습니다.  게다가 죠지 모로루 ( George Morrow ) 의 베이스까지 함께 날라야 했죠. 멕스는 유명했  기 때문에 행선지마다 드럼 세트를 제공해 주는 동료나 지인들이 있었으므로 직접 운반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당시의 뮤지션들은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값싼 이동 수단인 자동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브라운이나 덕 왓킨슨이나 이런 상황의 희상자였다고 할 수 있죠.

 

Int : [ Saxophone  Colossus ] 에는 당신의 자작곡이 3개 있습니다. 녹음을 위한 신곡의 리허설이나 준비는 사전에 해 두었나요?

 

SR : 리허설을 사전에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분명 언제나처럼 스튜디오에 집합하여 곡마다 간단한 합의를 거친 후, 곧바로 녹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Int : 이 앨범에서는 무엇보다도 칼립소 넘버의 < Saint Tomas > 가 유명합니다.

 

SR : 성공의 열쇠는 드러머인 멕스 로치가 카리브의 비트와 사운드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죠. 멕스는  브룩클린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습니다.  브룩클린에는 카리브 제도에서 이주해 온 `기치`의 거대한 공동 사회가 형성되 있 었습니다.
     
`기치`란  ( 소니 롤린스에 의하면 `Geecchie` 혹은 `Geechyy` 라는 철자지만, 속어이며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 카리브 제도를 거쳐 아메리카로 흘러 들어온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칭하는 것입니다.

로치는 아프리카로부터 이주해 온 기치들이 잘 하는 칼립소의 비트를 들으며 자라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 Saint Tomas > 를 연주할 때에는 어떤 리듬과 사운드로 연주하면 좋을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Int : 당신은 그 `칼립소`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브룩클린 출신의 피아니스트 랜디 웨스턴 ( Rendy Western ) 은 ` 소니는 1955년, 내가 RIVERSIDE 에서 녹음한 칼립소,< Fire doen there >을 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말했습니다. ( 역자 :  < Fire down there > ,  앨범 [ Get Happy ] 의 )


SR : 나의 양친은 버진 아일랜드 제도의 작은 섬인 세인트 토마스 출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양친에게서 칼립소의 멜로디를 자주 들었습니다.

세인트 토마스 섬은 최초로 덴마크 사람이 발견했던 것으로,  나의 양친이 그 섬에서 태어났을 무렵은 `덴마크 령 버진 아일랜드 ( Denish  Virgin  Island )` 라 불렸습니다.

실은, 덴마크의 포크송이 있었는데, < Viva Company > 라는 곡이었습니다.  그 곡은 ` 로렌스 마르키오`  라고 하는 배우겸 가수가 주연한 영화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난 그 곡도 들었었던 것이지요.  ( 라고 하면서 < Viva Company > 의 멜로디를 큰 소리고 흥얼거렸다. )

이 곡의 멜로디를 악보에 옮겨놓고 보면, 버진 아일랜드에 전해오는 칼립소의 멜로 디와 같습니다. 
결국, < Saint Tomas >의 루트를 추적해 보면, 덴마크의 민요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 자 모두 모여서 흥겹게 즐깁시다.` 라는 의미의 곡입니다.


 Int : < Strode Rode > 라는 오리지널의 곡명인 ` Strode Rode`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SR : 시카고에 있는 호텔인데 그 호텔의 이름입니다.
      시카고는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한 번 거주했던 적도 있습니다. 약 ( Drug ) 에 손을 댔다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는데, 그 시기에 시카고에 거주하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게다가 시카고는 낮이건 밤이건 음악이 끊임없는 도시였습니다. 시카고에서 난 꽤나 스타였죠.  마일스 데이비스 와 레코딩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소니 롤린스라고 하면 모두 알아 주었습니다. 그 시카고에 Strode 호텔이라는 작은 호텔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설적 트럼펫터였던 프레디 웹스터( Freddy Webster ) 가 마약 과용으로 타계했던 곳입니다.

프레디 웹스터는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영향을 준 유명한 뮤지션이었습니다.  마일스는 이 프레디 웹스터를 그대로 빼다 박았죠. 트럼펫터로서의 스타일에서 복장까지 그와 닮았습니다.  그런 전설적 뮤지션이 체류하고 있었던 곳이 Strode 호텔이었습니다. 그  프레디 웹스터를 기리기 위한 곡을 쓴 것입니다.

프레디 웹스터는 제 윗세대의 사람으로, 같이 연주한 적은 없습니다만, 위대한 트럼펫터 였습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그가 의문의 최후를 마친 Strode Rode 호텔의 사건을  생각하며 이 곡을 쓴 것입니다.



[[ The Musicians ]]

 -- 1956년5월 롤린스와 3인의 젊은 총예들은 기적의 명연을 남겼다. --

[ Saxphone  Colossus ]는 1956년 6월 22일, 뉴저시 하켄섹의 반 겔더 ( Rudy Van Gelder ) 스튜디오에서 녹음 되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레코딩 세션의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4인의 위대한 뮤지션의 당시 상황을 소개해 본다.  ( 연령은 1956년 6월 22일 당일을 기준으로 )


Sonny  Rollins  ( tenor sax )

1930년 9월 7일 생.

[ Saxophone  Colossus ] 의 녹음 당시, 롤린스의 나이는 25세로 주목 받는 신인 ( 1957년국제 비평가 투표 신인 1 위 )이었다. 18세에 처음으로 녹음을 체험하고 8년간 마일스 ( Miles Davis ), 파커 ( chatlie Parker ), 몽크 ( Thelonious Monk ),  버드 퍼웰 ( Bud Powell ) 등과 공연했다.

전 년(55년) 은 시카고에서,  브라운 ( Clifford Brown ) , 멕스 로치와 함께 56년1월 부터 `브라운=로치 퀸텟` 에서 활약.  3월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 +5 ] 를 녹음. ( 실제로는 `브라운=로치 퀸텟` 의 ) 3개월 후 자신의 정점에 다다른 걸작을 남겼다.

 


Tommy  Flanagan  ( piano )

1930sus 3월 16일 생.

세션 당시 26세. 50년대 전반,출신지인 디트로이트에서 케니 버렐 ( Kenny Burrel : g) 과 공연을 해 오며, 퍼웰派의 신인으로서 뉴욕까지 명성을 떨쳤다. 56년 2월에 뉴욕으로 진출,3월에 마일스의 [ Collector`s items ]세션에서 롤린스와 대면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6월에 [ Saxophone  Colossus ]세션에 기용되었다.

7월에는 엘라 핏츠제랄드 ( Ella Fitzgerald )와, 9월에는 J.J 존슨 ( J.J  Johnson ) 퀸텟에 참가하였고, 익년에는 유럽 투어에 참가 ( 그 무렵에 명반 [ Over seas ] 를 녹음. )하는 등, 활약을 전개했다.. 

 

Max  Roach  ( drum )

1925년 1월 10일 생.

세션 당시 멕스는 31세. 1954년 브라운 ( Clifford Brown ) 과 결성한 `브라운=로치 퀸텟` 으로 인기를 높여,  1955년에는 재즈 잡지 [다운비트] 의 `독자인기 투표` 와 '국제 비평가 투표`에서 동시에 드러머 부문 1위에 오르는 약진을 이뤘다.

56년 1월부터는 테너에  소니 롤린스가 정식 입단하면서 한층 비약을 이루어, 모던 재즈계 최강의콤보로 등극했다.         

 

Doug  Watkins  ( bass )

1934년 3월 2일 생.

27세에 요절한 왓킨슨은 [ Saxophone  Colossus ] 녹음 당시 약관 22세였다. 명수로서의 모습은 < Blue Seven > 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 54년 8월에 NY 으로 진출하여 바로 재즈 메신져스 ( The Jazz Messengers )에 참가, 초대 베이시스트로 활약했다.

세션 당시에는 PRESTIGE 의 사내(社內) 베이시스트로서  아트 테일러 ( Art Taylor ) 와 함께 다수의 녹음에 공헌했다.약 108회의 녹음으로, 이 기간에 아트 브레이키와의 콤비로 13회,  테일러와는 40회에 달했지만, 로치와 함께한 [ Saxophone  Colossus ]가 그가 남긴 최고의 기록이었다.

 

 

[[ Interview ]]

[ Saxophone  Colossus ] 에 관한 증언.

소니 롤린스 와는 `브라운=로치 퀸텟`에서도 근사한 협동 ( collaboration ) 을 보여주었던 멕스 로치 , 그리고, 명연주자 토미 플레니건 , 이렇게 2명의 세션 참가자와 이 앨범의 프로듀서였던,밥 웨인스톡,그리고 롤린스를 존경하는 테너 섹소폰 연주자들에게서 [ Saxophone  Colossus ] 에 관 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 단, 이 앨범에서의 실제 프로듀서는 라이너 노트를 담당하고 레코딩 감수인이기도한 아이라 기트러 ( Ira Gitler ) 였음. 밥 웨인스톡은 복통으로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

 
Interviewer : 小川隆夫



Max  Roach  ( 드러머, 오리지널 멤버 )

[소니는 무엇을 주문해도 해 내었다.]

오래 전부터 소니의 재능에 감복해 왔습니다.  그래서, 클리포드 ( Clifford Brown ) 와 같이 결성한 퀸텟에 영입했습니다.  시카고에서의 일이었지요,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이 레코딩이 있었던 것입니다.

소니는 무엇을 주문해도 해 내었습니다.  잔재주등을 부리지 않으면서,그때 그때의 기분을 있는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런 소니는 최고였죠. 소니가 갖고 있는 호쾌하면서도 대범한 매력을 이 정도의 이상적 형태로 들
려주고 있는 작품은 달리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Tommy  Flanagan  ( 피아니스트, 오리지널 멤버 )

[ 간략한 의견만을 나눈 채, 바로 Tape 를 돌린 것이죠 ]

소니와의 녹음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의 공연에서 부터였습니다.  당시,마일스는 콜트레인이랑 레드 ( Red  Galand ) 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스케쥴때문에 멤버가 모두 모일 수 없을 시에는 소니와 내가 참여하여 또 다른 퀸텟으로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소니와는 자주, 함께 연주하곤 했던 거지요. 

이 레코딩에 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순식간에 녹음이 끝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리허설도, 다른 무엇도 없이, 간략한 의견만을 나눈 채, 바로 Tape을 돌린것이죠. (Recording Tape)  연주를 하는 순간부터 이 레코딩은 훌륭한 것이 될 거라고 실감했습니다.

 

 

 
Bob Weinstock  ( 프로듀서 )

[ 마일스의 소개가 없었다면, 녹음을 하지 않았을 것 ]

소니를 소개해 준 것은 마일스 데이비스 였습니다.  자신의 밴드에 훌륭한 테너주자가 있으니,꼭 들으러 왔으면 좋겠다고 하여  [ 버드 랜드 ] 에 들으러 간 것이 최초였습니다.

그 때의 소니 에게선 아직 두드러진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1950년 무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 마일스의 레코딩에 그를 기용하여, 마일스의 아이디어대로 1곡만을 롤린스의 리더로 녹음했던 것 같은데,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레코드를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최초는 마일스에 의해 강행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진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역시 마일스 였습니다. 재능을 알아보는 식견이 대단했던 것이지요.몇 년 후,소니는 최고의 테너 주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녹음한 것이[ Saxophone Colossus ] 였습니다. 마일스의 소개가 없었다면,  아마 이 녹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Branford  Marsalis 

[ 나에게 있어서는 부적과도 같은 것이다. ]

롤린스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 Saxophone  Colossus ] 입니다. 롤린스가 이 정도까지 자유 자재로 연주한 작품은 달리 알지 못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그는,  구성 같은 것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표출되는 것 자체로 승부 해 버리는 듯한 점이 있습니다.

이건 대단한 것입니다, 부러운 재능이지요. 이런 자유 분방함을 대단히 좋아하여, 자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고교 때부터 대학까지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은 매일같이 들었었죠,  그다지 레코드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도 이유겠지만요.

( 웃음 ) 그 후, 뉴욕에 진출한 무렵에도 자주 들었습니다.
이 레코드에는 일종의 효능이 있어, 무언가 상당히 고민될 때 듣게 되면, 반드시 해결책이 떠 올랐습니다.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거죠.  마치 부적과도 같은 것이 었습니다. 롤린스 풍으로 불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 앨범은 교과서이기도 했지요.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모든 테너 주자가 들어봐야 할 작품입니다. 테너주자라면 이 작품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Tom  Scott

[ < St. Tomas >의 리드믹한 연주야말로,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콜트레인에게서 영향을 받기 전에는, 롤린스 일변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일 무렵에는 롤린스밖에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경쾌한  Blow가 좋아서,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그의 특징적인 연주와 닮고자 했죠.

[ Saxophone Colossus ] 가 굉장한 것은, 롤린스가 다른 사람의 카피가 아닌, 자신의 스타일을 완벽한 형태로 피로했다는 점입니다.  그 전까지는 호킨스 ( Coleman Hawkins ) 를  Mordan 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앨범의 전.후 작품을 들어보면 그가 완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아노가 없는 트리오의 ( Pianoless ) 연주도 뛰어났고,  블루 노트에서였던가요?!  [ 빌리지 뱅가드 ] 의 라이브도 최고입니다. 모두, [ Saxophone Colossus ] 를 발표한 시기의  레코딩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롤린스는 완벽히 자신의 모습을 확립했습니다.
예를 들어 < St. Tomas > 를 들어보면, 그런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리드믹한 연주야말로,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통의 스윙감과는 다릅니다. 흔한 댄스용의 것도 아니죠.  재즈 특유의 표현법 이면서도,  독특한 비트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소니 롤린스의 즉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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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글인데, 다시 보니 ,,, 설마설마하던 소니 아저씨의 나이도 예사롭지 않게 되고 말았군요.
실은 앨빈 존스의 죽음과, 동생을 보내고 더욱 활동에 박차를 가한 듯한 행크 존스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그 때 이제 한 분 두 분 가시겠구나,,하며 생각했었지요.  그리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맥스 로치의 부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실력자이면서도 치열한 시대를 풍족히 누리지 못해며 살아온 것은 비단 예전의 뮤지션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겠지요........

모 동호회에서 그의 부고를 듣곤 한 번 옮겨 봅니다.
--- 기사는 ` Swing Journal`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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