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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 되어버린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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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툴이랑 맥북에 대해 검색하다 우연히 몇 번씩 들어와서 글만 읽고 가곤 했는데 오늘은 몇 시간 째 이 글 저 글 보다가 몇 자 적고 갑니다. 저처럼 글만 읽고 가시는, 진로 고민하시는 분들과 공감도 할겸.


제가 듣는 강의의 한 선생님은 스튜디오를 운영하시는 분입니다.(혹시 여기 글 자주 읽으시는 분은 아닐까 염려됩니다만..ㅋ) 이 불경기에도 대기업 일을 계속해서 맡으시는걸 보면 유능하신 분인 것 같구요. 제가 원하는 쪽인 영화예고편, 광고, 홍보영상 등에 음악 만들어 입히시는 일을 하십니다. 저도 그런 류의 수업을 듣고 있는데, 역시 이건 내 일이구나 실감하고 있죠.
그 분은 매 수업 시간마다 강조하십니다. 음악 하지 말아라. 공무원 해라. 니네 4년제 나와서 청소하고 커피타고 싶냐. 스튜디오 들어가면 1년 내내 40만원 주고 2년 되면 80만원 3년 되면 120만원 줄거다. 5~8년 되면 그 땐 300이상 벌겠지만 그것도 끼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주말도 없고 친구도 가족도 없다. 매일 야근인데 출근은 정시다. 영화 드라마음악은 계속 하던 사람들이나 연줄 있는 사람만 하고, 광고주는 추상적인 개념만을 제시해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하니 미친다. 게임회사 사람들 다 젊은데 몇 살 까지 일하려고 들어가냐. 같이 음악 만드는 동료는 이미 동료가 아니라 경쟁 대상이다. 어느 날 출근하면 하드가 날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이 일하거나 이 일로 성공해서 40세 쯤 결혼해라. 중간에 결혼해서 계속 하는 사람을 못봤다.

저도 대충 알고 있었거든요. 항상 밤새고 주말 없고. 하지만 제가 집이 서울이 아닌지라 방세(고시원이라도)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월급은 어느 정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회사에서 먹고 자겠다고 생각했었죠. 결혼도 늦게 하려고 생각했고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청소 시키는 것이나 동료가 그 정도의 라이벌이라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지만요.

그래서 저번 주에는 제가 가고 싶은 한 포스트 프로덕션 얘기를 슬쩍 했더니 가지 말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튜디오 윗사람들 중에 막대하고 막말하는 사람들 많지만 그 회사 녹음실에 있는 사람이 최강이다. (선생님의 말을 순화하여 씁니다) 거기 연봉은 높다. 하지만 들어가게 되더라도 3개월 안에 니 발로 나가거나 니가 쫓겨난다.

대학 4학년이다보니 취업에 민감한게 사실입니다. 살 곳이 필요하고 보증금을 위해 직장인 대출이라도 받으려면 정기적인 일정 수업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께 용돈도 보내드려야겠구요. 전 여자이지만 꾸미지도 않고 사치도 없고 입도 싼 음식만 찾아서 돈도 거의 쓰지 않는데, 직업을 얻는 데에서도 돈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작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건 아무래도 돈 때문에 제겐 무리일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저 회사에서 뽑아줄지도 의문이지만, 쫓겨나면 그 땐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해야할까.

음악을 계속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고민은 물론 가끔씩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원점이었죠. 일본에 갈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작년부터. OSM을 생각했거든요. 지금까지 독하게 산 것처럼 살면 거기서도 살지 않겠나 싶어서. 그런데 여기 와서 수많은 글들을 읽어보니, 일본의 음악 시장이 한국보다 넓어 내가 잘만하면 취업도 잘되고 급여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제가, 역시 환상을 가지고 있었군요.

방송에 피디 음향부터 음악에 관련 없는 각종 직업까지 다 세세히 찾아봤건만 역시 제가 오래 꿈꿔온 일이 아니라 그런지 제가 갈 길은 아닌 것 같네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10대 때 부터 작년까지는 말이죠,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찾아서 하면 빵먹고 잠못자도 그게 행복인 줄 알았거든요. 이제 일이 현실로 다가오니, 젊은 나이에 몇 년을 그렇게 미친듯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정말 행복일까.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서 부모님과 밥을 먹고 얘기를 하다 오고, 봄엔 꽃구경 겨울엔 눈구경 하고, 친구들 오랜만에 만나 사는 얘기 듣고, 휴일엔 느긋하게 애인과 데이트도 하고, 이런 행복 없이도 좋을만큼 일하는 행복이 정말 클까_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군요. 요 몇일 간. 물론 다른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하루 반나절을 일로 보내고 나이 들어서 까지 하겠지만 말이에요, 그냥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한' 급여 받는 '적당한'회사에 가면 저런 것들 즐기면서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봤어요. 제가 너무 심각하게 스튜디오 일을 비약하고 있는건 아닌가 의문스럽네요. 아직 공부할 것도, 모르는 분야도 태산 같은데.

가볍게 쓸랬는데 심각하게 지껄여버렸길래 글을 조금 줄였지만, 그래도 길군요..ㅋ
인사겸 푸념겸 썼어요. 다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고민하신 부분이라 생각했거든요.

여긴 운영자님과의 소통이 되는 곳이라서 좋네요. 직접 글도 올려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오늘 가입했으니 이제 자주 와서 정보도 많이 얻고 귀한 생각 많이 읽어가겠습니다.

다들 초심으로 즐거운 음악 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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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장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저랑 연배가 비슷할 것 같네요...
남의 일 같지 않아 글을 남겨 봅니다...
저도 이 일하려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 - 노가다, 임상실험, 보조출연, 택배회사, 음식점...휴우...
잠도 못자고 세탕씩 뒤면서 돈을 모았습니다.한 5년정도 했나요...

덕분에 나이도 좀 먹어 버렸고
이제 겨우 이쪽에 발을 들여 놓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 했던 덕분인지 서서히 기회가 오고 있는 것 같아서 고생한 보람이 있다 생각하기도 하구요...

현실때문에 다른일을 할 지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와신상담 하신다면
하늘에서 님에게 기회를 주실 겁니다.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싳어요...

하늘은 스스로 돔는자를 돕는다 합니다.
저도 시작화는 입장이라 아직 멀었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 생각하고 전투적인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세상에 나의 노래가 울려 퍼질 날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엠줴이님의 댓글

이렇게 장문의 글을 넷상에서 자유롭게 쓰실정도의 분이라면 많은 사색을 하셨을 것이고,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답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ㅎㅎ

이런저런 상황은...생각해보면 정말 최악입니다. 최악중에서도 아주 상최악이라 할 수 있지요.
더 큰 문제점은...이게 좋아질 기미는 안보이고 누가 봐도 확실히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겁니다. 끝이 안보이죠.

하지만 말이죠...
이런저런 별 그지같은 상황을 견딜만큼...주말, 친구, 가족, 사생활 모두 포기할만큼...이 길이 좋으면 할 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저는 결국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결국 업으로 삼지 못하고 돈은 안되지만 대신 시간과 여유가 좀 나는 다른일 해가면서 하고픈 음악만 골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이래저래 별 그지같은 상황이 별로 없는거 빼고는 주말, 친구, 가족, 사생활 모두 포기하는 건 똑같네요. ㅎㅎ

잘 생각해보시면...진정 자신이 무엇을 하고있을 때 기쁜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ps..참고로...국내 상황의 경우 다른일 한다고 그렇게 시간나고 그런건 전혀 아닙니다. 제가 소싯적 운이 좋아 취업잘되는 학교/학과를 다닐 수 있어서 절친한 친구들의 경우 이름대면 알만한 G+D자동차, L+P LCD, D모 건설,S모 반도체 등에 각각 취업해서 아주~ 잘 나가고 있습니다만 평균 퇴근시간이 저녁 9시정도이며, 좀 일찍 퇴근할라치면 반복되는 회식과 접대...새벽 3시에 울면서 전화하는 친구놈도 있고...아주 전쟁터죠.
요쪽 음악관련 시장이 약간 더 심할런가요? 비슷한 것 같은데요. ㅎㅎ

Jesus fan님의 댓글

시련의 세월이 없이 어찌 행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
저는 음악을 하면서 반평생을 지낸 사람인데요, 행복은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님을 인생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 일이 미치고 싶도록 좋다면, 그일을 하기 위해 그만큼 내가 희생해야할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하죠!
때로는 하루 하루의 끼니를 위해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할 때도 있고, 마음을 억누르며 내 생각과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하루 하루 견뎌내야죠!

달의 요정 님은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랍니다! 행복한 나날을 위해 몇년쯤 고생하는 것,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달의 요정 님의 고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힘내세요!!!

우주여행님의 댓글

본문 끝자락에 '비약' 이라고 하셨는데
저 같은 경우를 보면 비약은 절대 아닌 듯 합니다.
물론 잘 나가는 녹음실도 조금은 있고
특히 포스트 쪽은 24시간이 모자란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대부분의 녹음실이나 기사분들은 본문 내용이 '비약'이 아닐 만큼
정말 어려운 현실인 거 같습니다.
저만해도 실력 부족인지 운이 없는 건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들어오는 일은 별로 없고 적자만 거듭되어 허덕이길 몇년 째입니다. ㅠ.ㅠ
현재 몸담고 있는 곳에서 조만간 나와서 아주 작은 작업실(미디방 수준)을 하나 얻어
믹싱만 가끔 하며 이 일을 취미로 돌리고 다른 밥줄을 구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러려니 어떤 밥줄을 구해야 할지, 이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나이는 들었고...
차라리 돈 못 벌고 못 먹더라도 그냥 미친척 하고 이 일을 계속 해볼까
하는 생각도 최근엔 들더군요. 작업실이 아닌 작은 녹음실을 구해서 말이죠.
그치만 현재 돈이 없어서 이것도 언제쯤에나 실현 가능할지 미지수...
아무튼 현실은 참 암담합니다.
오래전에 들은 얘기론 이 일로 돈 벌어 먹고사는 사람은 전체의 약 5% 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그게 미국의 실정이었으니 한국이라면 5%도 채 안 될듯 합니다.
그렇다고 님한테 이 일 그만두고 다른거 하시라고도 못 하겠네요. ^^;;
"당신은 왜 계속 하는데? 나도 미친척 하고 할거야!" 라고 하시면 할 말 없죠.
정말 그렇습니다. 미친, 정신나간 인간이 아니면 이 일을 밥줄로 택한다는 게
정상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택은 본인이... 심사숙고 해서 잘 하시길... 어느쪽을 선택하든 후회는 될 듯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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