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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다운로드 많이들 이용하시나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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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다운로드’ 관련 글을 쓰게 된 도화선이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신보와 구보를 포함하여 음반을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에 신경이 쓰여 일단 갖고 있는 거나 차분하게 다시 들어 귀를 두텁게 키워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좋아하는 음악인의 앨범이 좋은 가격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2개를 반품했습니다. 각각 다른 레이블인데 하나는 완전한 반품이고 하나는 재고가 없기 때문에 약 한 달 후 재입고 되면 교환을 받기로 한 상태입니다.

교환과 반품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환 대상은 처음에 케이스가 깨져서 왔습니다. 더불어 음반의 가장자리에 자잘한 스크래치가 있더군요. 신호가 기록되어져 있지 않는 부분이었으므로 재생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새 상품으로 용인되지 않아 교환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교환을 했더니 비슷한 부분이 또 깨져 있었습니다. 사이드 라벨 때문에 비닐을 벗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데, 자세히 보니 라벨 위로 무언가 눌린 흔적이 있습니다. 이전 것과 위치는 거의 비슷한데 아마 동일한 상품이 어떤 충격이나 압력을 동일하게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차 교환을 요구했습니다.

반품 대상은 (비록 가격 조건이 매우 좋았음에도 그 가격에조차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패키지 상태 때문이었습니다. 염가판과는 거리가 먼 모 레이블의 3장 세트인데, 이것이 작은 종이 박스 안에 종이 슬리브 포장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비닐 포장 안의 종이 박스에는 바닥 모서리를 타고 검은 때가 죽 타 있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 발매되는 종이 슬리브 타입은 일본에서 만드는 LP 미니어처 타입과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원가 절감을 위한 염가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가뜩이나 속지가 없이 빡빡한 상태로 끼워져 있어 디스크에 스크래치가 있기 십상인데, 종이 슬리브의 이음매가 안쪽에 있어서 신호 면에 그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심조심하며 첫 장을 꺼내어 준비해 둔 주얼 케이스에 옮긴 후, 두 번째 장을 꺼내다가 도중에 그만 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포장을 해 버렸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인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들어보려 하지도 않았으니 저도 참 빡빡한 성격입니다.

수입원에 문의해보니 그 레이블 담당자도 그런 패키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제작 측에게 이전과 같은 패키지를 요구하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만나면 한 번 더 요구할 텐데 어려울 것 같다면서 말입니다.

예전에 콜롬비아에서 마일스나 콜트레인의 박스 세트가 기획된 적이 있습니다. 마치 케이스에서 사전을 뽑듯이 뽑아들면 책처럼 만들어진 패키지의 낱장에서 디스크를 꺼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속지가 없이 빡빡한 상태로 끼워져 있기 때문에 디스크에 스크래치가 나 있었습니다. 그걸 살살 뽑아서 주얼 케이스에 옮겨 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금속까지 사용된 돈 들인(?) 패키지인데 실용성은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회사 책임자였다면 그것을 디자인한 기획자를 문책했을 겁니다. 같은 시리즈를 갖고 있는 지인과 디스크를 뽑느라 고생했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하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접니다.
예전에는 스크래치가 조금 있었어도 그냥 썼습니다. 돈이 부족하여 시리즈를 적극적으로 구매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을 뿐이었죠. 그리고 이번에 반품한 것도 최소한 들어보는 시도는 해 보았을 겁니다. 포장을 다시 해 놓고 한 일은 수입원 담당자와의 (다른 패키지로 들어올 가능성은 있는지) 통화였고 그 다음은 HD 트랙스 등에 하이레졸루션 음원으로 올라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HMV 등에 HQ나 SHM 등으로 올라와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케이스가 깨져 있던 것도 예전 같았으면 그냥 사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한 달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구입처에 원했던 것은 케이스만 바꿔도 전혀 상관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그 케이스가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거라면 불편 접수를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왜 예전과 달라졌는가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의 패키지 미디어 만듦새가 오히려 예전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환 대상품은 재킷 일러스트까지 거론될 정도로 패키지에 신경 쓰는 레이블입니다. 반품을 한 것 역시 독자적인 재킷 일러스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전자는 일본 음반인데, 주얼 케이스가 국내에서 따로 살 수 있는 것과 다릅니다. 디스크를 고정하는 부분도 다르고요. 그런데 그 파트가 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걸 무척 귀찮아하는 편인데도 말이죠.

패키지 미디어의 만듦새가 떨어지고 가치가 예전만 못한 요즘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품으로서 결점이 없는 걸 갖고 싶었던 겁니다. 예전과 달라진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하나의 앨범에서 음악 정보가 담겨 있는 음반의 존재는 절대적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입하는 입장에 따라서는 그 존재감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미묘하게, 혹은 크게 달라지겠죠. Ethan 님 말씀처럼 크레디트라든가 재킷 또한 전체적인 방향성이나 의도를 나타낼 수 있으니까요. 모두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던 것인데, 나이 어린 세대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킷 일러스트도 연관이 있으려면 한 없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이 얼마만큼 상업적이고 얼마만큼 앨범을 대변하고 있는지 등도 흥밋거리가 될 텐데 말입니다.

블래스토프 님 말씀처럼 억지로 따라가는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료 스트리밍이 아니라도 내용적으로 제법 좋은 것이 많으니 편리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유료 다운로드가 애매해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음악 산업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라는 차원에서 지금처럼 풍족했던 시대가 없으며 앞으로 더욱 발전하겠지만, 그것을 만들고 필요로 하는 건 결국 사람의 인식이기 때문에, 모순과도 같이 정보의 발전과 소리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가 반비례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감각 기관이 쇠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실제로 근 몇 십 년 동안 후각이나 청각이 쇠퇴했다고 그러니까요).

크룬 님이나 칼잡이 님 말씀처럼 음원을 건드리는 것도 문제겠죠. 플레이어나 앰프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경제적이거나 실용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아예 무용론을 주장하는)도 있는데, 미세한 음의 차이 자체에 반응하는 것에 얼마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휴대용 플레이어의 다용과 함께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너무나 쉽게 부응하듯 행해지는 무분별한 맥시마이징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일각에서만 비판되는 형국입니다.
거론된 것처럼 내노라하는 프로듀서와 엔지니어가 만든 상질의 사운드가 미디어에 담겨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는 것도 힘들 테죠(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참 전에 알만큼 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음반을 음향이 뛰어난 다른 곳에서 듣고 한숨을 내쉬게 되는 일이 되풀이 되는 경우는 흔할 테니까요).
혹자는 32bit 체계, 384kHz 샘플링 이상의 세계가 되면 더 이상 아날로그 재생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절대적인 자세로 주장하지만 저는 근시안적인 사고라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언급된 문제서부터 다양한 해결 과제가 또 다시 부상할 겁니다.

감흥을 빼앗겼다는 JesusReigns 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류의 감흥도 다운로드에서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행동과 실행의 폭, 그리고 운신이라는 점에서 발품을 팔아 숍에서 직접 골라드는 일련의 과정이 가장 큰 느낌을 줄 것이며 종합 예술이라고 표현하신 아날로그 레코드가 가장 큰 감흥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쉽게 손에 들어오거나 다룰 수 있는 것을 쉽게 대하는 습성이 있으니까요.
한때, 책장에 책만 잔뜩 꽂아 두는 게 한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 하겠나 하는 회의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음반도 마찬가지죠. 게다가 그것이 ‘나는 원하는 걸 모아서 잘 간직하는 걸 중시한다’라는 확고한 생각을 다진 다음에 갖게 된 생각이어서 많이 흔들렸습니다. 물건, 물질에 사로잡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죠. 정말 음악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그것을 접하는 형태가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잠시 했는데, 지금은 따질 가치조차도 없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그 모든 것이 각자에게 나름대로 소중하도 말이죠. 정말 음악 자체만 중요하다면 녹음물이 필요 없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죠. 절대적 주연이 음악임은 누구나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청룡열차 님처럼 짜증까지 나지는 않지만(아마 아날로그 레코드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휴대용 기기로 듣던 세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때는 원판의 음질이 열화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쨌든 정도의 문제일 겁니다.
2테라 하드 하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영상 소프트가 HD화 되고 과거의 영상물이 다시 재가공되어 화질 향상이 도모되듯이 오래된 음원, 특히 아날로그 음원이 하이레졸루션 음원으로 옮겨지는 게 앞으로의 시장이 아닐까 합니다(그래서 구입을 망설이는 타이틀도 많습니다. 조금 있으면 최소 96kHz/24bit로 대체되는 게 아닐까 해서).
그래서 기존의 44.1kHz/24bit에 대해서는 ‘뭐, 그런가’ 하며 심드렁하게 넘길 수 있지만, SACD의 내용을 하이레졸루션 파일로 리핑한다는 것에는 정말 부러움을 넘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 내가 다른 거 아껴서 산 이 음반들은 대체 뭐지’ 하는.
어린 아이 같은 시기처럼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대학생 신분으로 살 수 있는 CD의 양은 상당히 한정되겠지만, 청년기를 지나서 아저씨 나이가 되면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일단 들을 시간도 부족하고요. ^^;  질적 차이를 거론하시니 본인이 원하는 걸 구입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

어쨌든 미디어를 접하는 작금의 상황을 간만에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전의 구입과 그것을 단번에 수용할 수 없는 결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저 자신의 가치관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한 번 꺾인 르네상스를 다시 부흥시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당시의 그 감각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이제는 터만 남아 있는 그 옛날의 목조 건축물 자리를 보고 도대체 이렇게 큰 터에 어떻게 건물을 세웠을지 풀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인간문화재의 대가 끊기면 영원히 재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양주동 선생이 안 계셨다면 향가와 고려가요 연구가 아직도 미진할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종이 책과 패키지 미디어의 질적 저하(만듦새의)는 불가피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하더라도 단가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고요.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다면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책임을 떠안을 사람들의 의식이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큰 손이 오직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인상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현재입니다. 아주 예전에는 대학 입학 선물로 받고 싶은 것으로 오디오가 독보적인 자리를 점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생활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더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무언가가 잔뜩 있는 요즘, 사람들이 화려하고 손에 넣기 쉬운 재밋거리를 제쳐두고 음악에 몰두하려 할 지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2채널 아날로그보다 못한 소리를 멀티채널로 듣고 있는 상황도 흔할 겁니다.

먼지를 머리에 이은 채 한 쪽 구석에서 몇 년간 꿈쩍도 않은 음반이나 책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입니다. 구입을 결정할 때 꼼꼼히 따졌으니까요. 그런데 그 양이 무척 적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듣다시피 넘긴 게 의외로 많았습니다. 다시금 차분히 들어보자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눈에 불을 켜고 들을 게 아니면서 왜 구입했을까. 책이나 음반, 특히 박스 세트 같은 걸 보면 ‘언젠가는’ 이라며 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이 진짜 언젠가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는 걸 체감하여 알고 있었죠.

하지만 스트리밍과 다운로드의 시대가 완전히 정착하게 되면 이런 가치관도 함께 변할 겁니다. 신세대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겠지만 구세대인 저로서는 능동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겠죠.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는 것보다 더, 혹은 동등한 즐거움을 느끼는 분야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술 마시고 노는 거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반을 산다거나 책을 구입하려면 다른 즐거움에 투자할 수 있는 상대적 가치를 포기하는 셈입니다. 뭐, 돈이 아주 많다면 이런 생각도 달라지겠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존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작금의 이런 풍요로움과 편의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연 바람직할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인간의 근본적인 행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다소 사족적인 생각마저 해보면서 말이죠.

기술의 발전이 한 문명의 발전과 완전히 비례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런 바람을 만듦새가 안 좋은, 좋아하는 음악인의 앨범을 접하면서 잠시 해 보았던 것입니다(자기 글에 직접 토달기네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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