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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뮤직 "휘리"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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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브리즈뮤직 스튜디오

 

최정훈-오디오가이 _이하 최

왕두호-휘리님 _이하 휘

 

최 :안녕하세요 휘리님. 최근에 오디오가이 리뷰어로 활동하시고 계신데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시게 되셨는지요??

 

휘: 사실 고등학생 때는 클래식 피아노를 열심히 쳤던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러나 음악보다는 게임에 더 빠져 살았지요. 대신 디지털 가젯, 디지털 디바이스 같은걸 좋아해서 일본에서 클리에나 팜파일럿 같은 PDA 같은걸 수입 해다가 인터넷에서 중고로 팔기도 했어요. 흔히 나까마라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고등학생 때 용돈을 벌어 썼지요. 그래서 조금 더 IT에 눈을 빨리 뜨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가격비교 사이트가 막 생겨날 때라 인터넷 커머스란 것이 일반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냉장고 구입하신다고 저를 찾아오기도 했으니까요 하하.

 

최: 재미있네요.

 

휘: 네 재미있었죠. 그리고 20살 때까지는 음악보다는 PDA 수입해서 팔고 게임에만 빠져 살았죠. 그렇게 번 돈을 어디에 썼냐면, 만나던 여자친구 독서실비, 학원비 내주는데 썼어요. 집안이 어려운 친구였거든요. 또 고등학교 때 돈을 벌고 선생님들을 자주 도와주다보니 ‘성실하고 착하고 공부는 안하지만 자기 할일 하는 애’란 이미지를 얻어 수업시간에도 노트북을 쓸 수 있었어요. 수업시간에 나와 전화도 받을 수 있었구요. 저는 공부는 관심이 없었지만 언제나 복장이 단정하고 인사를 잘 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 졸업을 했고, 저는 하던 용돈벌이를 그만뒀고, 동시에 여자친구에게 차였어요. 그리고 나서는 느꼈지요. “아.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사랑조차도 지키기 어렵구나” 그래서 돈을 벌고 싶었고, 20살때 대학을 안다니고 바로 취업을 했어요. 집에서는 제가 대학을 잘 다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구요. 왜냐면 학적은 등록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학교를 안가고 일을 하러 갔어요. 방화동에 한 수입업체에서 피규어를 포장하는 일을 했죠. 그렇게 한달에 80만원정도를 벌었어요. 그러던 9월 쯤, 수능시험 접수일이 다가오는데, 대학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무겁게 짓누르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는 안했지만 그 해 수능을 다시 봤어요. 그렇게 경원대 경영학과를 들어가게 되었지요.

 

저는 원래 밴드 ‘포플레이’ 의 팬이에요. 그런데 학교를 들어갔는데, 학교에 퓨젼 재즈 동아리가 있는 거에요. 그렇게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오디션을 봤죠. 그때 오디션에서 리오펑크를 쳤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선배들이 ‘쟤 뽑자’ 이런 느낌보다는 수군거리는 느낌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동아리에 들어간 후에도 모난 돌 취급을 받았어요.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배우는 후배가 아니라 연주를 좀 하는 후배가 오니 선배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죠. 그러다가 밴드동아리에서 쫓겨나게 되요. 제가 폭음하고 과음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밴드 동아리는 매일 술을 마시잖아요. 근데 제가 매번 빼고 피하고 그러다보니 단체 행동에 안 어울리는 아이가 되서 쫓겨나게 됐죠.

그때가 2월쯤, 다음년도 후배가 들어오기 직전이여서 제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베이스기타 교재를 직접 집필하고 거기에 좋은 선재로 케이블도 손수 납땜해서 만들어놓고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동아리에서 쫒겨나게 되니까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인터넷에 글을 올렸어요. ‘내가 무료로 레슨을 해 줄 테니 배우고 싶은 사람은 와서 배워라’ 하구요. 그렇게 온 사람들을 정말 마음을 다해서 가르쳤어요. 기타 산다고 하면 낙원상가도 따라가주고, 만들어둔 케이블도 주고, 교재도 무료로 주고요. 레슨비도 안받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다들 고마워하고 계속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동호회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입소문이 나서 인원은 점점 많아지는데, 다들 모여서 연습할 공간은 부족하고.. 합주실을 매번 빌리려다보니 부담도 커지고.. 결국 월세 14만원짜리 곰팡이 냄새 나는 지하실을 하나 빌리게 되요.

2011년도의 지하 작업실

 

그곳은 형광등 하나 켜지고 바퀴벌레가 막 움직이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재밌는건, 사람들이 자꾸 말도 없이 돈을 주고 가는 거예요. 전 돈 안 받겠다고 했는데도 차비라도 하라면서요. 결국 한달에 3~4만원을 회비로 받게 되었어요. 지하에 에어컨이 없어 답답했는데, 그 정도면 에어컨을 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그룹으로 레슨을 하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수업을 하다보니 대학생 신분에 꽤 많은 용돈을 벌었어요. 그럼 이 돈을 어디다가 써야 현명할까 고민하다가, 술 먹고 옷 사입는 것만 빼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했어요. 다섯달동안 차 한대 빌려서 미국 전토를 여행하기도 했고, 일본, 유럽, 동남아, 중앙아시아, 세계 곳곳에 배낭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혔어요. 영어는 덤으로 늘었고요. 포데라 같은 하이엔드 악기도 사서 써보고, 철학 서적을 보며 밤새도록 친구들과 싸워보고, 길거리에서 양말도 팔아보고, 맛집탐방, 사진찍기, 스쿠버 다이빙 등등 안 해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벌었던 돈들은 나 스스로에게 다 투자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제 인격이 완성되었던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레슨을 하면서, 학교도 다녔지만 조그마한 사업도 운영했었어요. 기관들 대상으로 하는 서버 호스팅 회사였는데, 영업하러 새파란 젊은 친구가 오니 고객들이 상대도 잘 안해줬고, 덕분에 나이가 어린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명함을 ‘대표’ 로 파고, 그 다음에는 점점 직급을 내렸어요.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다보니 목소리가 점점 두꺼워지고, 말과 행동도 또래보다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 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업도 하면서 레슨도 하면서 몇 년이 지났을 때, 어느 순간 레슨한 사람들을 돌아보니 200명도 넘는거에요. 그것도 거의 30~40대로요. 그 사람들 모아서 스폰서도 구해서 공연도 시켜주고, 이것저것 공연기획도 하고, 날 믿고 악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났더니 그분들이 제 인생에 멘토가 되어주시더라고요. 너무 고맙게도 제 인생을 걱정해주는 좋은 선배들이 갑자기 생기게 되었던 거죠.

그 때 제가 좋은 실용음악 학원도 있고, 경제력도 있으신 분들이 대체 왜 저에게 오셔서 악기를 배웠냐고 여쭤보니, 너무 열심히 가르쳐서 미안해서 그만둘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고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지내던 중, 저에게 연습실을 14만원에 렌탈 해주던 친구가 사기를 당해요. 그래서 그 연습실 보증금이 다 날아가고 쫓겨나게 되었죠. 그때, 제가 처음으로 집에 손을 벌려 그 연습실을 보증금을 제가 대납할 생각으로 둘다 쫒겨나지 않게 하려고 집 주인을 만나러 갔어요. 그런데 집주인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보증금을 올려줘도요. 그래서 오기가 생겨서 알겠습니다 하고 그 친구를 데리고 지금 브리즈 뮤직이 있는 곳으로 왔어요. 그때는 아무런 공사도 안되있고 텅빈 지하실에 벽에 덕지덕지 계란 판만 붙어 있었어요.

 

최: 그때가 몇 년 전이에요?

 

휘: 딱 4년 전이요. 그렇게 그곳에서 저는 레슨을 한 방에서 하고 저에게 세를 준 친구는 옆방에서 세를 사는 공생관계가 시작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한테 이벤트를 해주고 싶은데 갑자기 곡이 떠올라서 건반을 치며 10만원짜리 오디오 인터페이스로 녹음을 했어요.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들려줬는데 너무 좋아하는거에요. 그래서 이걸 조금 더 좋게 해볼 순 없을까 싶어 옆방에 있던 그 친구를 찾아갔어요. 그때 당시 그 친구가 10만원짜리 콘덴서 마이크가 있었어요. 처음에 그 마이크로 녹음했는데 음질이 너무 좋은거에요. 그렇게 그 친구랑 같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제가 노래를 하고 그 친구가 포비트 피아노랑 드럼을 찍어줬어요. 그리고 다시 여자친구에게 들려줬더니 또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이거 너무 감동적이다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이걸 이벤트로 돈 조금씩 받더라도 사람들한테 해볼까?’ 그렇게 된 거죠. 그렇게 이벤트로 한명, 두명을 받았는데 너무 좋아하는거에요. 그때는 녹음할 줄도 모르고 곡도 써본 적이 없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걸 당시에 서울시에서 하던 청년사업 프로젝트로 창업 아이디어로 내자 했는데 떨어졌어요. 저는 그게 너무 불만이었죠.

이건 분명히 될 텐데 왜 안 된다고 생각할까 하면서 오기가 생기는거에요. 실패를 모르던 남자였는데 천명을 뽑는 일에 1000등도 못 들었다는 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하자, 우리가 차려서 된다는 걸 한번 보여주자 하고 일종의 오기로 시작했어요.

2012년 5월 브리즈뮤직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리빌엑티브라는 탄노이 모니터 스피커를 놓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오는 사람들에게 곡도 써주고 가사도 써주곤 했죠. 그렇게 두세 번 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었어요. 저는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고 좋은 퀄리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같이 일하는 친구는 이벤트는 이벤트로 끝내야 한다 하여 노선이 갈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전 그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작업을 했어요. 내가 만약에 믹싱을 해놨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게 되면 전부 다시 하기도 하구요. 그러다보니 오는 손님들이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하나둘 씩, 이벤트가 아니라 음반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런 사람들이 오니 제가 꼭 사기꾼 같은 거에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 작업을 해주는 게 과연 맞는건가? 내가 ‘잘 모른다’고 그 사람들에게 말해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이 일을 안해야 정직한 것인가? 매일같이 고민했어요.

그러다보니 제 스스로 무언가에 쫓기기 시작했어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맘 편하게 자본적이 없어요. 더 잘하고 싶었고, 멋진 녹음실, 프로페셔널 사운드를 제 손에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내 손에서 만들어, 나를 믿고 온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금액은 안올렸어요. 더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그리고 퀄리티는 계속 올라갔고, 들어온 돈도 안 쓰고 모았다가 돈 생기면 모두 장비를 샀어요.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제가 장비병 걸렸다면서 ‘이벤트’냐 ‘음반제작’이냐가 갈려 같이 일하던 친구는 이벤트 녹음실을 차려 나갔고 저는 ‘아니다, 내 손에서 최고의 음악을 만들거다. 꼭 대학 나와야 음악하는거 아니다’하며 작곡, 편곡, 음향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2013년 브리즈뮤직

 

노이만 M149와 U87

 

그러다보니 손님들도 인정해주고,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고, 정말 바보같게도 이정도면 나도 꽤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다 우연히 오디오가이에 장인석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됐어요. 저는 당시에 갔을 때 꽤 거만했어요. 제가 엔지니어라 생각했고 음악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속에 제가 아는 단어가 하나도 안 나오는거에요. 다른 분들이 무슨 얘기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난 들리지도 않는 험노이즈가 누군가는 들린다고 하고, 새쳐레이션이 어떻다며 얘기를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했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딱 상황 판단이 되면서 너무 부끄러운거에요. 나는 아직 출발도 못한 상태였구나 싶어서요. 지금도 그렇지만 맨날 저는 지식에 목이 말라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하고요.

 

어느 순간 그렇게 내 주제를 파악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제 음악이 수준이 떨어지는게 제 귀에도 들리더라구요. 오만한 마음이 귀를 가렸던거죠. 그 다음부턴 믹싱이 조금씩 늘더라고요. 하지만 잘하는 사람은 너무나 멀리 있고, 저는 제 수준이 딱 보이니 여전히 금액을 더 올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장사라면 금액을 올렸을 텐데 저 스스로가 큰 돈을 받을 준비가 안 되 있다고 생각하니 못 올리겠어서 그냥 딱 박아놨어요. 그 금액만 받고 대신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퀄리티를 뽑아줘서 믿어주는 사람들한테 보답하면 된다’ 하는 마인드로 음반을 만들었죠.

 

최: 보시기에 어떤 사람들이 믹싱을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휘: 음반 들었을 때 노라존스 프로듀서 앨범 같은 거 있죠. 어떻게 이런 사운드와 감성을 담았을까 하는 앨범이요.

 

최: 사실 노라존스 앨범은 데모 레코딩이 정식 음반으로 발매된 독특한 케이스이지요. 데모 이후에 정식 녹음을 했는데 데모 때보다 느낌이 좋지 않다해서 데모본이 음반으로 나왔죠.

 

휘: 상상도 못했네요. 국내에선 SM, YG 등 다 너무 잘하는데 제가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게 아니여서 제가 좋아하는 사운드는 아니에요. 저는 물랑루즈 OST같은 그런 앨범이 좋아요. 저는 또 사운드만 만지는게 아니고 작곡, 편곡부터 믹싱까지 해야하니 편곡적인 측면이나 보컬의 감성이 잘 표현되어 있는지 같은걸 더 중요하게 봐요. 사운드적인 측면에선 포플레이가 최고인 것 같아요. 제가 어려서부터 포플레이 광팬이라 고등학교때부터 포플레이 시디가 시디피에 갈아질 때까지 세 번 이상 다시 샀거든요. 그때 포플레이 음악을 들으며 울었어요. 너무 감동적이잖아요. 연주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그때의 감성이 지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 둘 씩 작업을 해나가면서 음반 제작 전반을 배우게 됐어요. 음반 유통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원래 음반 작업은 어떻게 하는 거였구나. 원래 미리 데모를 보내서 오케이가 난 다음에 유통을 하는거구나. 저는 항상 음반을 완성한 다음에 유통하는지 알았거든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죠. 그렇게 조금씩 버는 돈으로는 또 장비를 샀어요. 왜 그렇게 좋은 장비에 집착하냐면, 적어도 아티스트들이 장비를 봤을 때 이렇게 허름한 장비로는 좋은 소리를 뽑아주기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게되면 절대로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거든요. 그리고 제 실력이 부족하니까 장비에서 부족한 부분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 필요하다 생각하는 장비는 빚을 내서라도 다 샀어요. 그리고선 2년동안 싱글 앨범을 200장 이상 냈죠. 곡 작업을 한 달에 10개씩 했고 곡도 100곡 가까이 썼고요.

 

최: 그게 가능한가요?

 

휘: 정말, 정말 안자고 그것만 했어요.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됬던건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IT. 제가 군 생활을 모 대학교에서 공익근무를 했거든요. 제가 그때 어떤 일을 했었냐면 대학병원 부속 전산 네트워크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이였어요, 원래 공익한테 그런 일 안 시키거든요.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카운터 접수하는 일을 시켰어요. 근데 저는 그 일이 너무 싫었어요. 단순 반복되는 일을 싫어하거든요. 누군가 문제를 던져주고 제가 해결해서 역시 넌 최고다 이런 말을 들으면 피로가 다 풀리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 제가 병원에 들어가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 그때 당시 병원 차트가 수기로 작성되던 것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병원 내부에는 전산 관련 인력이 한명도 없었구요. 딱 보니 제가 자신 있는 분야여서 나섰더니 전혀 안 먹히더라구요. 공익이 어딜 나서냐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럼 제가 할 수 있은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혼자 차트실에 들어가 차트 육십만 장을 혼자 정리했어요. 두 달 동안 집에도 안가고 밤 11시까지요. 그것도 공익이 말이에요. 그 일이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러고나니 이후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다 믿어주더라구요. 그 다음부터 제가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 하게 됬어요. 크게는 전산 프로그램 설계, 개발, 업무분석, 교육, DB관리, 입찰계약 관리까지.. 작게는 컴퓨터 수리부터 보안 방화벽 관리까지 제가 다 했어요. 그런 것들을 하면서 IT적인 지식과 이해가 굉장히 좋아졌지요.

 

그게 끝나고 브리즈뮤직을 시작하면서 제가 처음 투자했던 장비는 서버였어요. 서버 컴퓨터를 제일 먼저 투자했죠. 왜냐하면 ‘백업을 안한다면 우리 일은 하면 안되는 일이다, 3중 백업까지 하지 못하면 디지털로는 기록을 하면 안 된다’ 싶어 백업을 하고 그걸 다시 백업하여, 네트워크 기가 비트로 구성으로 서버팜을 구성 한 뒤 브리즈뮤직 안에서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바로 프로젝트를 공유할 수 있게 서버시스템을 만들어 놨어요. 그리고 저희와 같이 작업하는 세션들, 가이드 보컬들 집에 레코딩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바로 작업할 수 있게 만들었죠. 가이드 보컬, 코러스 세션, 기타, 건반 세션 등.. 도와줄 세션들을 구축했어요. 그렇게 되면 꼭 와서 해야 하는 작업이 아니면, 굳이 녹음하러 올 필요도 없는거죠.

그렇게 계약을 맺고 저는 항상 타이핑, 혹은 허밍으로 편곡을 해서 보내드렸어요.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서로의 스타일과 소통을 알아 마치 제 몸처럼 연주를 부탁하게 되고, 저도 제가 세션처럼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처럼 음악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죠. 그렇게 서로 잘 맞아 꽉 짜여져 있는 세션들이 함께 하고 있어요.

그렇게 의뢰자들이 무엇이 필요하다 말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 놓고 의뢰가 들어왔을 때, 저는 마치 인테리어 업자 같은 역할을 했어요. 사람들이 와서 뭘 만들고 싶다 얘기를 하면 제가 그 자리에서 플랜을 다 짜주고, 설계도를 그려주고, 어떤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상세하게 알려주면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 들어갈 총 비용에 대해서도 전부 설명해줬어요. 원하는 느낌이 이런 것인지 음악을 들려주며 대화하고, 불확실한 것들을 음악적으로 정리하고, 그렇게 한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업무 지시서를 만들었죠.

‘이분의 음역대는 어디까진데 톤때문에 음역을 풀로 쓰면 안 되고 세팅은 이정도로 하고’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으니, 실제로 제가 해야 할 일은 상상하는 것. 그리고 책임지는 일밖에 없었어요. 작곡가 분들에게는 취향이 이러하시니, 이런 식으로 곡을 쓰면 됩니다. 하고 전달하고, 연주자 분들에겐 이렇게 연주해주시면 된다고 하고 그분들에게 일이 착착 넘어가면 실제로 저는 구상만 정확히 만들어 음악인이 이해하는 언어로 명확하게 정리하여 전달해주면 되는거죠.

 

최: 해외로 진출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휘: 이런식으로 작업하면 꽤 퀄리티도 좋아요. 저희 가격대에 작업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미디에요. 미디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연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미디는 그저 미디가 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올 리얼이에요. 드럼의 경우 녹음을 할 수 없으니 최신에 나온 드럼 소스를 전부 다 사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시퀀싱을 해요. 드러머가요. 드러머가 직접 시퀀싱을 하고 건반은 건반 플레이어가 치고 기타는 기타 플레이어가 치구요.

 

최: 드럼을 녹음하시면 어떠세요?

 

휘: 칼박으로 딱딱 녹음을 해줄 수 있는 드러머들 비용이 워낙 비싸서 어려워요. 그리고 믹싱할 때, 트리거를 거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있고, 스튜디오도 꽤 비용이 있고요.

 

 

최: 이번에 아비드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오픈된다고 하던데요.

 

휘: 네, 저도 그 얘기 들었어요. 서로 멀리 있는 사람끼리 레코딩이 가능하죠. 큐베이스에도 구현되어 있죠. 근데 저는 그 시스템에 큰 관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쳐서 보내주는 것과, 치는 것을 보는 것의 차이는 바로 ‘디렉션’ 을 실시간으로 줄 수 있느냐 인데, 세션 연주에 ‘디렉션’ 을 많이 주게 되면 거기서 많은 시간들이 소요가 되고, 원래 연주자들이 하고 싶었던 플레이를 펼치질 못해요. 그러면 그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의미가 없죠. 만약 그렇게 디렉션을 많이 줘야 한다면, 연주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게 맞아요. 후진 소스에 믹싱 아무리 해봐야, 소스를 다시 받는게 낫죠.

그래서 최대한 디렉션은 명확하게 가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곡 자체가 디렉션이에요. 발라드 곡에다가 펑키 스트록 칠 수 없잖아요. (웃음) 그래서 많은 부분을 아티스트의 주관에 맡겨요. 그러나 이런 작업들을 하나로 합쳐서 관리해야 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해요. 음악이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걸 어디서 만들어 내냐면 바로 믹싱에서 만들어요. 저는 믹싱은 편곡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믹싱에서 밸런스 뿐 아니라 곡의 편곡 방향도 바꿀 수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자유롭게 ‘믹싱’을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느 부분에서 드라이브 기타를 줄이고 어쿠스틱을 올리면 전혀 분위기가 달라지고 반대로 드라이브 백킹을 올리면 락킹해지는거죠. 그래서 제가 하는 작업은 믹싱이자 편곡인거죠. 그리고 많은 에디팅과 이펙팅을 통해서도 믹싱을 해요. 리앰핑도 하고요. 이렇게 해서 작업하는 비용을 60~70만원 정도 받아요. 전파트 리얼에, 작사 작곡, 녹음, 믹싱, 튠, 마스터링까지요. 그러면 싱글 음반을 만들러 오는 사람도 귀가 있는데 올 세션으로 만드는 음악과 미디로 하는 음악은 차원이 다르다 느끼죠. 그렇지만 모두의 십시일반으로 모인 음악이 분명히 음악적인 일관성에서는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중음악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기존 곡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그걸 연주자를 통해 구현해야 하는데 그게 비용이 비싸니 미디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거기서 문제가 생기지요. 우리가 어려서부터 듣던 음반들은 모두 최고의 연주자들이 만들어 내는 음반이잖아요.

 

 

최: 그럼 수익이 너무 적지 않나요?

 

휘: 적어요. 수익이 굉장히 적고요, 다들 저보고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냐고 할 정도로요. 풀 밴드로 하게 되면 전부 세션비 주고 나면 제게 떨어지는 비용은 거의 없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작업을 하면서 제가 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어떤게 느냐면... 제가 앞에 한 얘기 중에 음반 작업을 해오면서 지금까지 저를 있게 해준 한가지는 IT에 대한 지식이라고 했잖아요. 나머지 하나는 바로 심리적인 부분예요. 저는 작업할 떄 토크백을 끄지 않아요. 아예 토크백을 안 끄고요. 항상 보컬 디렉팅을 할 때 안에 있는 사람 눈을 보면서 얘기하거든요.

그리고 녹음하는 사람 만큼, 저도 노래를 계속 불러줘요. 그러면서 리듬도 맞춰주고 그 사람이 노래하는 것에 리엑션도 해주고 좋을때는 너무 좋다고 박수치며 칭찬도 많이 해주고 그러면서 상대방의 심리적인 요소를 어루만졌을 때 음악적으로 월등해 지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 다음부터는 저는 음악 퀄리티를 올리는데 꼭 필요한 요소가 장비, 저의 실력, 참여한 연주자들의 실력, 그리고 아티스트들의 심리상태. 이렇게 4가지 정도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골고루 잘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노래하기에 좋은 부스는 너무 커서도 안되고 너무 춥거나 더워서도 안되고 전체적인 조명도 맞아야하고, 그 사람에게 내가 말할 때 토크백 톤이 어떤 느낌인지까지도 고려해요. 예를 들어 맥키 빅놉으로 토크백 버튼 누르고 얘기할 땐 저음이 사라지고 그냥 기계가 얘기하는 듯 한 사운드가 나잖아요. 게다가 듣는 헤드폰도 7506 이라면, 안그래도 긴장한 가수들에겐 더더욱 차갑게 느껴질거에요. 이런게 상황에 따라서는 룸튜닝보다도 중요한 요소이기도 해요.

그러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 제가 그 사람 옆에서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듯 한 느낌을 주려고 토크백에 이큐를 걸고, 룸리버브까지 살짝 걸어서 너무 드라이하지 않게 해요.

보컬 모니터를 줄때도, 모니터 이큐를 그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잡아줘요. 이 사람이 긴장해서 음이 떨린다 하면 떠는 부분이 잘 들리지 않도록 하이를 깎아 준다던지 풍성하게 불러야 하는데 풍성하지 않다 하면 로우를 깎아 더 풍성하게 부를 수 있도록 끌어낸다던지 성량을 다 안쓰면 모니터 레벨을 줄여준다던지.. 사람과 나의 심리적인 싸움이 이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래’고, 노래를 위해 모든 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기에 노래하는 사람을 잘 ‘디렉팅’ 하지 못하면 퀄리티는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한편으로는 저희 클라이언트들은 아마추어가 많이 오거든요. 그 분들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들이에요. 그런 분들에게 어떻게 해야 좋은 소리가 나는지 잘 캐치해서 기분 상하지 않게 전달해줘야 해요.

 

최: 근데 그런 것들이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가요?

 

휘: 네, 왜냐면 음향적인 기술들과 심리적인 부분들을 잘 응용하고, 마지막으로 연주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배려가 함께 하면 가능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적어도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불러도 들어줄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것들은 이미 선배 엔지니어, 프로듀서 분들이 오랫동안 해 오셨던 일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오면 말을 많이 아껴요. 응원하는 청중이 되어주는 편이에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살리고 응원해주는 역할의 디렉팅을 하면서 멜로디의 다이내믹 등만 조금씩 조절하게 되죠.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노래를 잘 못해서 스튜디오에서 떠는 데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꼼수가 생긴 것 같아요. 저 혼자서도 부스에 들어가서 노래도 해보고 하는데, 만약 내가 이곳에서 녹음을 하고 누군가 디렉팅을 한다고 했을 때 고립된 방에서 귓가로만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생각하면 불안하더라고요. 그리고 토크백이 꺼져 있으니까 뭔가 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토크백도 일부러 안 끄고 더 따뜻하게, 또렷하게 말하려 노력하고 잘 했을 땐 칭찬도 많이 해주려 해요.

 

그러면서 느끼는 게 심리적인 부분이 이렇게 크고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 부분인데 과연 엔지니어란 사람은 어디까지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왜냐면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 동원되는 기술이 엔지니어적인 역량들 말고도 굉장히 여러 가지가 필요하잖아요. 엔지니어의 분야라고 하기는 어려운 편곡, 발성 부분까지도 존재하니까요. 그러다보니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요.

2년 동안 늘었던 것은 음향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과 공감하는 법’ 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아티스트와 마음이 통하고 나면, 그 사람은 꼭 다시 와요. 다른 사람이 저를 비난해도 제 편을 들어줘요. 고맙죠. 이 일을 그래서 못 놓는 것 같아요. 돈이 안 되고 정말 힘들어도 그 사람들이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후기라도 하나 남겨주고 고맙다고 얘기하고 인정해주면 너무 좋더라고요. 전 원래 어릴 때부터 돈 욕심은 별로 없었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열심히 살았거든요.

 

최: 그럼 앞으로는요?

휘: 지금은 일단 하고 있는 브리즈뮤직 일을 더 키워보고 싶어요. 저처럼 젊고 실력 있고 마음을 다해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세상에 많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런 분들을 발굴해서 더 좋은 프로덕션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미디에 밀려서 스튜디오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수많은 연주자들, 곡을 잘 써도 기회가 없는 작곡가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아마도 일반 사람들을 위한 프로덕션이 될 수도 있고 저렴한 비용으로 음반을 제작하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덕션도 될 수 있지만, 어찌됬건 작곡, 편곡이 필요한 대중음악적인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와도 원스톱으로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장기적인 비젼으로는 제가 일단 어느 정도 이 일에 대해 알게 되고 편곡이든, 믹싱이든 제가 실력이 생겨야 같이 일하는 스탭들을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정말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 실력 있는 작곡가들을 일반 사람들과 연결해 줄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음반 제작이란 것이 음악에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일반 사람들도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로 만들어야 음반 산업에 미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단가가 내려가야 하고 그 단가 안에서 해결이 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IT 기술이 불필요한 지출을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최: 그럼 음악 산업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요?

 

휘: 기본적으로 음반 산업 자체가 음원으로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멜론에는 하루에도 삼사백장의 앨범이 나와도 나왔는지조차 모르고 사라져요. 더 이상 신보라는 개념은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라 신보는 특정 몇몇 교섭력이 있는 회사들에게만 허용되는 단어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니 저희는 어차피 음반 산업에서 메이저가 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엔터테이너를 키워 공연, 행사로 뛰어들지 않는 이상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상황이라면 음악을 창조하고 생산 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어떤 생태계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는 일반 대중한테 접근 할 수 있는 접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반제작이라는 것은 그동안 전부 ‘도매’ 형태로만 이루어졌으니, 새로운 ‘소매시장’을 만들어 보자는 거죠.

 

 

최: 그럼 그 가운데 수익은 어떻게 되나요?

 

휘: 저희와 같은 일반인 음반제작 시장이 어느 정도 시장이 규모를 갖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음반제작’ 에 대한 인식이 ‘가수’ 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고 각인된다면, 본격적으로 수익 창출 역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통신비 2만원도 비싸다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5만원 이상 통신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 처럼요.

그리고 국내에만 시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 시장도 있고요.

 

최: 그런데 이미 인터넷의 발달로 소비자들은 음악은 소비가 아니라 무료라는 개념이 더 자리잡고 있지 않나요?

 

휘: 청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더 ‘음원’이 아니라, ‘음반제작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생산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르죠. 그러니까 일종의 ‘판매산업’이 아니라 ‘체험산업’으로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땐 어떤 특정 산업이 붕괴되기 시작하면 그 산업의 구조가 변형되어 파생되는 두 가지 중의 하나가 ‘체험’이고 하나는 ‘교육’이에요. 왜냐면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으로 먹고살 수 없기 때문에 ‘교육’으로 가게 되는 거고 ‘교육’으로 만들어진 후발주자 또한 기술의 본질로 먹고살지 못하고 다시 ‘교육’으로 빠지게 되는 거죠. 현대의 많은 분야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이 고리를 어느 정도 끊어내고 연주자가 연주자로서의 의미를 다 하려면 기본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것으로 돈을 창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져야 한다 생각 하거든요. 그래야 음악하는 사람들이 부유해질 수 있죠.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생산하며 먹고 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근데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니라서 국내외에 지금도 이런 플랫폼이 많이 있어요. 해외에도 수많은 온라인 세션, 온라인 믹싱, 온라인 마스터링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있거든요. 국내에도 ‘크몽’ 같은 사이트가 있죠. 그러나 문제는 누군가 중간에서 메니지 해줄 수 있는 프로듀서, 또 그 많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업체가 하나 있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모른 상태에서 얼굴을 보지 않고 시작 하는 두 사람의 작업이 행복하게 끝나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온라인 믹싱을 하겠다고 글을 올려보자고요. 믹싱 하는 사람이 제네렉 라지스피커로 믹싱을 하건, B&W로 하건, 듣는 사람은 2만원짜리 이어버드로 듣고 몇번이고 수정을 자기 입맛에 맞게 요구할 겁니다. 그러면 엔지니어는 폭발하겠죠. 이 둘은 절대 행복하게 끝날 수 없어요. 그게 바로 음악 제작 산업에서 순수 온라인 기반 스타트업이나, 비즈니스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친절하고, 그리고 경험 많고, 똑똑하게 모든 제작과정을 가이드 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는 프로덕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저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말은 쉬운데 막상 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3년간 운영해오면서 15개도 넘는 경쟁사들이 나타났고, 또 사라졌거든요.

저는 나름 돈을 번다는 개념보다 일종의 시장을 창출한다는 느낌으로 일반인들한테만 광고하고 홍보해요. 오히려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은 저희 같은 저렴한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더 잘하고 능력 있는 프로 분들을 찾아가시면 되고 저는 일반 사람들, 정말 음악을 만들고 싶고 가수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근대적이지 않은 깨끗하고 깔끔한 비지니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격도 먼저 오픈하고 음악도 오픈해서 올려놓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이런 일에 딜레마가 있어요. 시장의 어떤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저희로 인해 기존에 일반인 음반을 제작하시는 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요. 왜냐면 기존의 음반 제작이란 저렴한 것이 아니었는데 너희들로 인해 저렴해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거꾸로 시장이라는게 처음 생겨 뭘 하던 간에 진입을 하려면 소비자에게 인식과 습관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일단 유저의 습관을 창출하고 그 사람들의 사고 고려의 폭에 이런 것들이 가능하단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최: 그럼 음악이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생각하세요?

 

휘: 저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 그렇다면 음악 외에 흔히 예술이라 하는 분야에선 특별함이 존재하나요?

 

휘: 저는 음악과 예술을 구분지어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만들어 내는 것들을 특별한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예술이죠. 하지만 보편적인 ‘예술’의 단어 이미지와는 제가 만들어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요. (의자를 가르키며) 예를 들어 이 의자가 처음에는 무척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 이였을 수 있지만 대중화가 되기 시작하면 보편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이 스툴을 처음 개발한 회사는 처음에는 센세이셔널한 디자인의 물건이라 했겠지만 보편적 디자인이 되가 면서 예술은 일상이 되어 갑니다. 제가 자주 가는 순대국집 이모도 매일 새벽 뼈를 고아 혼을 담은 순대국을 끓이거든요. 그것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상에서의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예술은 음악의 기능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어떤 한 개인의 감성을 만족시키는 예술이라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그러한 일상에서의 예술은 보편적인 예술의 정의와는 달라서, 저는 스스로 대중음악가라 이야기해요. 스스로 예술가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거든요. 왜냐면 저는 대중의 갈증을 달래주고자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 뭔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시도, 접근을 저랑은 가깝지 않죠. 가구 만드는 장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예술가지만, 우리는 이케아, 한샘처럼 대량생산해주는 업체들 덕분에 그러한 예술을 매일 저렴하게 누리고 있어요. 저는 음악은 가구보다 더 큰 니즈를 만들 수 있는 품목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의 예술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잖아요.

 

최: 그렇다면 휘리님에게 음악은 무엇인가요?

 

휘: 저한데 있어서 음악은 그냥 삶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 지향점이기도 하지만 음악이라는 건 저의 종목이지 목표는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만약 음악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더라도 비슷한 일을 했을 것이고 다른 어떤 걸 했더라도 그런 일들을 구성했을 거에요.

 

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란 일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휘: 좋아요. 재밌구요. 그리고 사실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좋다기보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서 좋아요. 그냥 그게 좋아요. 그 음악을 듣고 감동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그 음악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고맙구요.

 

최: 그럼 그것이 휘리님의 자아실현의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겠네요.

 

휘: 네, 저는 그게 커요. 저란 인간 자체는 돈에 왔다 갔다 하진 않거든요. 저는 인정받고 제 능력으로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럼에도 제가 먹고 살 수 있다면 제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 앞으로의 미래는요?

 

휘: 앞으로의 미래가 저는 또렷하게 구성하기 어려워요. 제가 하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저도 잘 모르고, 제가 하는 일이 사라질 수 있고요. 하지만 사업이나 인생이나, 어떤 목표를 지향하고 정확히 나아가 딱 지향점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 삶은 되게 재미없고 한계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요.

 

최: 그 지향점에 도착이 존재하는지 저는 모르겠네요. 가면 또 다른 지향점이 생기잖아요.

 

휘: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제 인생의 목표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제 인생의 목표에요. 제 인생의 목표는 거창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정말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최: 왜요?

 

휘: 별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저는 누군가 사랑하고 그걸 평생 동안 지켜나감에 있어 자아적인 완성도와 스스로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하거든요.

 

최: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이 되면 지켜가며 살잖아요.

 

휘: 글쎄요, 지켜가며 산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행복하게라는 전제가 붙잖아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미래는 확실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좋아요, 제가 하는 일이.

 

최: 사운드 작업은 어떤 부분 할 때 재밌으세요?

 

휘: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아티스트가 더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을 해요.

 

최: 내가 좋아하는 것 보다요?

 

휘: 네, 이렇게 하면 정말 좋아할 것 같은데 하는 두근거림과 설렘을 가지고 작업을 해요.

 

최: 그럼 때론 사람들에게 맞추어서 작업하다보면 자신의 존재가 투명해지고 사라지게 되는 것 같진 않으세요?

 

휘: 저는 어떻게 보면 일을 하면서 제 주관을 배제하려고 정말 노력을 해요. 왜냐면 제가 정말 주관이 뚜렷하고 제 주관이 모든 걸 지배한다면 제 일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도 많은 변수가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걸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거든요. 전혀 업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야기가 나ㅣ누다 보면 상처를 많이 받아요. 그들은 그것이 예의에 어긋난 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요. 그랬을 때 처음에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만둬야겠다’ 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95프로고 더 많으니까, 그래서 계속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것으로 좋은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창출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브리즈뮤직 일이 전 좋아요.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22-06-08 13:58:42 인터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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